만화가 이현세 “곽경택 감독은 영상, 나는 웹툰으로 공동 작품 ‘명품시대’ 만든다”[이사람]

강석봉 기자 2023. 11. 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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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사진제공|트래블팀



만화가 이현세! 참 간단명료하다. 만화책 만드니까 그리 불렀다. 지난 28일 경북 울진의 매화초등학교에선 제2회 울진웹툰영화제가 열렸다. 이 마을은 ‘공포의 외인구단남벌’ 등으로 유명한 이현세의 이름을 딴 매화이현세만화벽화마을(이하, 이현세벽화마을)로 유명하다. 이곳은 이현세의 원적지다. 이곳에서 울진웹툰영화제가 열렸다. 만화가 이현세는 이곳에서 귀빈이다. 그의 존재는 만화로 단순화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그는 시쳇말로 크리에이터요,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다. 거장의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를 만나, 웹툰 세상을 사는 만화가 이현세의 혜안을 살폈다. 아래는 이현세와의 일문일답.

- 암 투병 이후 근황은 어떠한가?

이제 나이 70세다. 워낙 험하게 살아와서 남아 있는 시간은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더 씩씩하게 잘살고 있다. 그간 맹렬하게 살아왔다. 충분히 행복했고 또 충분히 충만했다. 인생으로 따지자면 풀코스 마라톤을 무사히 끝낸 기분이라고 할까. 그래서 나머지 시간도 굉장히 즐기면서 살고 있다. 예를 들면 날밤 새워서 원고도 썼고, 술도 많이 마셨다. 전투하듯이. 내가 만화를 시작할 때, 만화 그 자체가 황무지였다. 내가 처음 이 바닥에 나왔을 때 내가 가면 그게 길이 됐다. 그러니까 신도 났지만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 이현세를 추앙하는 이현세벽화마을에서 웹툰영화제가 열리는 것에 대한 소감은?

“일단 너무 재밌다.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처럼 굉장히 감동을 주기도 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고향이 다 여기다. 내가 태어난 곳은 포항이다. 그리고 6살 이후에 경주로 이사해 경주에서 초··고를 다녔다. 선산이 울진에 있어서 이곳이 원적지다.

- 최근 시작한 AI 작업,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AI가 굉장히 똑똑한데, 반대로 보면 멍청한 게 있다. 예를 들면 4천 권의 책을 기억하고 학습하는 능력은 굉장히 뛰어나다. 근데 사소한 것만 선이 끊어져 있어도 그걸 건너뛰지 못한다. 사람으로 치면 IQ는 좋은데 EQ가 떨어진다. 이 컴퓨터라는 게 4층 책을 다 학습하는 것은 잘한다. 그에 비해 옛날 만화책은 말풍선 등이 있다. 이런 것이 그림을 가린다. 그걸 다 이어줘야 한다. 그걸 추론해서 작업하지 못한다. 그것을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그 학습 기간이 꽤 걸린다. 먼저 나오는 작품은 AI하고 나하고 다시 리메이크한 작업이다. 올 12월 30일쯤이면 일단 1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고교 외인부대’와 ‘카론의 새벽’ 두 작품이다. 재담 미디어와 세종대 인공지능학과와 함께한 작업으로 이 두 작품을 먼저 발표하게 될 것이다. 그다음에 이현세 대신에 스토리와 작화 이런 걸 추론해서 그리는 인공지능 작업이다. 그런 이유로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몇 년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저 대신 그리는 AI는 이렇게 비유하면 되겠다. AI가 그렸다 해도 이현세의 모든 것들을 학습한 이상, AI가 그린 이현세 만화가 되는 거다. 여기에 좀 통쾌한 게 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잖은가. 운명에 다해서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내가 생각하고 내가 그리고 싶어 했던 화풍으로 만화를 계속 AI가 그려서 세상과 공유한다고 하니까 나는 죽지만 통쾌하게도 나를 남기고 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있더라.

- 웹툰으로 넘어오면서 페이지 연출법, 스크롤 연출법 차이로 어려움 없었는지?

“그렇다. 아주 다르다. 그런데 앞으로 AI가 그려낼 만화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면 옛날에 우리 출판만화는 평면적이고, 공간 연속 연출이다. 하나의 공간을 지면을 나눠서 문단을 연속적으로 연출하는 거다. 영화처럼 컷을 쭉 시간적으로 이어서 하는 시간 연속 예술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들어가면 어떤 홀로그램이라든지 수많은 것들을 다 토해낼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앞으로는 하늘에 만화를 그리고 있을 거다.

이현세. 사진제공|트래블팀



- 올해 초 웹툰 작가 과로사 사건 등에 비춰봤을 때 웹툰 산업 발전 대비 창작자 권익 개선이 더디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게 제일 심각한 문제이긴 하다. 그건 플랫폼들이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들 스스로 해결을 할 수가 없다. 작가들은 지금 무한 경쟁에 들어가 있다. 조회 수에 목숨을 거니까 히트 작가는 히트 작가대로 잠을 못 자고 빈곤 작가는 빈곤 작가대로 살기가 어렵다. 그 둘 사이에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해져 있다. 결국은 작가는 그렇게 무한 경쟁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문화 산업이 잘 나가서 우리나라 기업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실제로 이득을 보고 있다. K컬처에 의한 수많은 경제 이익을 누리는데 우리 만화도 그렇다. 플랫폼들이 그런 작가들의 만화를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시킴으로써 대기업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 최소한도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수익의 한 10% 정도는 그런 작가들을 보호하는 데 써야 한다.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 웹툰 무한경쟁시대, 창작자에게 어떤 점이 요구되고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쟁에 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는지?

“그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할 때마다 다르다. 그런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은 작가로 얼마나 롱런하는데 있다. 작가가 한 작품을 가지고 10년을 가도 롱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소비자와 소통을 계속 공유하는 능력이 최고에 이르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정직해야 한다. 자기감정에. 소비자들이 그걸 너무 잘 안다. 이 사람이 건성으로 하고 있는지 정말 자기 몸으로 얘기하고 있는 건지 알더라. 그다음에는 독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습득하는 정보는 SNS를 통해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 이제 지식은 그렇게 큰 무기가 되지 않는다. 독서를 통해서 글과 글 사이 행간에 자기만의 상상을 채워야 한다. 그 시간이 있어야만 생각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결국은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반 박자 정도 빨리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더 나은 이야기를 계속 끌고 가게 만들 수 있다. 실제 만화에서 주는 정보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전달된다. 다만 그걸 어떻게 가공할 지의 문제다. 약간의 조미료를 쳐서 이렇게 감칠맛 나게 전달하는가가 상업 작가의 가장 큰 능력이다. 그러니까 그거는 독서를 많이 해야 가능해진다. 그런 후라면 낙서를 해도 재밌어진다. 그건 솔직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매일 일기를 써야 한다. 그러면 자기 속마음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진다. 사실은 기자들이 쓰지만 작가들은 그 사실 안에 있는 것에 대한 글을 쓴다. 핫한 사건이 터져도 그 안에 내면에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추론해 내기는 힘들다. 그건 기자가 아닌 작가가 다룰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사실보다는 진실이 더 중요하다. 그런 걸 찾아내려면 독서를 많이 하고 일기를 많이 써서 자기 속마음을 자꾸 써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연히 매일 잠자기 전에 한 장의 그림을 더 그리고자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럼 1년이면 365장, 10년이면 3650장이 된다.

- 아직도 디지털이 아닌 직접 손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손으로 그린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기계보다 제 손이 훨씬 더 빠르다. 또 하나는 디지털에는 원화라는 개념이 없다. NFT라는 게 있잖은가. 수작업 원화의 전시회를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 올해 2회 맞은 웹툰영화제, 많은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영상화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어떻게 봤었는지?

“가장 큰 차이점은 연출의 언어가 다르다는 거다. 영화 문법하고 우리 만화와 웹툰의 문법은 꽤 큰 차이가 있다. 웹툰 쪽에는 사람의 섬세한 눈빛이나 이런 섬세한 연기는 안 되는 대신에, 사람이 연기하면 도저히 징그러워서 못 보는 그런 걸 그림에서는 훨씬 더 강렬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보여줘서 좋은 부분과 웹툰에서 보여줘서 좋은 부분이 서로 다르다. 영화에서 피해야 될 부분과 웹툰에서 피해야 될 부분은 서로 다르다. 그것은 연출한 사람들만 알죠. 그림의 연기와 실제 사람의 연기에 차이를 파악하면 웹툰을 원작으로 해서 좋은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

- 현재 준비 중인 신작, 차기작은?

“영화 ‘친구’를 연출한 곽경택 감독과 아주 친하다. 곽경택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가지고 투트랙으로 간다. 곽 감독은 드라마로 가고 나는 웹툰으로 연출한다. 둘이 발표하는 건데 제가 먼저 발표하게 될 거다. 가제는 명품시대’다. 내용은 사람은 짝퉁을 왜 좋아하고 짝퉁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짝퉁은 어떻게 유통이 되는가에 대한 거다. 그러고 왜 그런 세계의 명품 브랜드들이 짝퉁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왜 짝퉁 삶을 살 게 되는가에 대한 것을 다룬 작품이다.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움 지금은 갖고 있지 않지만 그걸 가졌으면 좋겠어. 가짜라도 갖고 싶다는 꿈을 꾸는 거다. 그게 언젠가 진짜가 되기를 희망하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볼 수 있겠다.

- 현재 활동 중인 웹툰 작가 중에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는지?

지금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강지영이라는 세종대를 졸업한 여학생이 있다. 킹스 메이커 등 유명한 작품이 있다.

- 이번 웹툰 영화제에 소감을 밝힌다면?

“동네잔치가 지금 2회째다. 너무 재밌다. 그리고 너무 멋지다. 이 웹툰영화제가 국제대회가 될 거로 생각한다. 세계 사람들이 웹툰만 보고 있다. 이 이야기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거다. 그런 말이 있잖은가. 내 시작은 미비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웹툰, 그리고 이 웹툰영화제가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이현세. 사진제공|트래블팀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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