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리더의 소통] 이 가을에 고흐의 편지를 읽어야 하는 이유

2023. 11. 3. 17: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생에게 전한 편지 속 메시지
물질 풍요와 정신적 결핍시대
사랑하는 이들을 돌아보게 해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받아 주세요." 낯선 숙소의 창밖 늦가을 풍경을 내다보며 '가을 편지'라는 옛 노래를 듣다가 출장 가방 안에 챙겨온 책을 꺼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 모음이다. 1882년 7월 24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형 빈센트의 편지에는 일의 소중함이 담겨 있다. "새벽 4시면 잠에서 깨어나 창가에 앉는다. 그리고 목초지와 목수의 작업장,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 들판에서 커피를 끓이기 위해 불을 피우는 농부들을 스케치하지.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니?"

위대한 화가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위대한 편지 문학 작가였다. 37년 짧은 인생을 예감이라도 한 듯 쉼 없이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 중 현재 보존된 것은 903통, 이 가운데 그가 보낸 것은 820통이며, 그중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58통이다. 형은 동생이 보낸 편지들을 읽은 뒤 대부분 불태워 버려 41통만 남아 있지만, 동생은 형에 관한 것들이라면 뭐든지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 덕분에 암스테르담 반 고흐 박물관은 6권짜리 서한집을 발간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 등 3개 언어로 쓴 그의 편지는 그림 못지않게 서간문학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월요일 아침 나는 파리로 떠난단다. 브뤼셀에 2시 7분 도착. 가능하다면 역전으로 나와 주렴. 그렇다면 나에게 큰 기쁨이 될 거야."

이국의 낯선 도시 기차역 플랫폼에서 동생에게 만나자며 손으로 꾹꾹 눌러쓴 형의 편지는 얼마나 낭만적인가? 인간이 발명한 훌륭한 소통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점차 잃어가는 습관이 돼버린 손 편지,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진하게 배어 있는 소통의 한 장면이다. 반 고흐는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그가 그린 집시족처럼 늘 이동했다. 유럽 전역에 철도망이 급격하게 확장하던 당시의 교통기술 발전 덕분이었다. 기차는 인간의 소통방식에도 큰 변화를 일으켜, 반 고흐가 보낸 엄청난 양의 편지와 그림도 실어 날라주었다. 어디에 머물든지 빈센트 반 고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으며 특히 네 살 어린 동생 테오에게 매주 편지를 보냈다. 편지 한 귀퉁이에 드로잉과 여행 풍경 등도 함께 그려 보냈는데 귀한 예술품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는 예술 얘기와 함께 생활비 하소연이 가장 많다. "간절히 네게 바라는 게 있다면 제발 편지 쓰는 것을 미루지 말고 많든 적든 네가 가진 것을 보내 달라는 거야. 하지만 문자 그대로 내가 정말 배고프다는 것을 알아다오."

화상으로 일하던 동생 테오는 형의 후원자이자 소통 창구였으며 예술가로서 형의 번득이는 창조성과 가치를 생전에 알아본 극소수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완전히 다른 형의 페르소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도 편지에서 읽을 수 있다. "한 사람은 드문 재능을 가진 진정한 예술가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무정한 인간이야."

생활이 넉넉지 못하면서도 편지를 받으면 돈을 보내주던 착한 동생이었다. 아를에서 동생에게 보낸 형의 편지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결핍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들린다. "건강이 좋다면 하루 종일 일해도 빵 한 조각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해. (중략) 그리고 높은 하늘의 별과 무한함도 분명 느껴야 해. 그럴 때 인생은 참으로 매력적이지." 새삼 우리가 지구라는 별에 온 목적이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이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이 세상에 왔을까? 한때는 친한 사이였지만 몇 년 동안 연락조차 없는 친구나 형제자매도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미안했다, 보고 싶다' 이 한마디를 건네기가 왜 이리 힘들던가. 가을이 가기 전에 편지 한 통, 아니면 문자라도 보내 봐야겠다.

[손관승 리더십과 자기계발 전문 작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