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악마의 상품' 전세대출
선의로 베푼 일이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과보호를 받으며 커왔던 동물이 무방비 상태로 야생의 세계로 나가면 순식간에 다른 들짐승에게 먹히게 마련이다.
전세자금 대출은 대표적인 '그릇된 선의로 포장된' 상품이다. 전세대출 한도는 2011년 8000만원으로 오른 데 이어 2015년에는 5억원까지 올랐다. 극심한 전월세난 해소를 위한 금융지원이라는 정책 목표는 분명히 선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세대출로 공급된 유동성이 집주인에게 흘러 들어가며 집값이 폭등해 세입자들에게는 '독배'로 돌아갔다.
가령 신혼부부가 개인대출, 보유 현금, 양가 부모 도움 등을 다 합쳐 감내할 수 있는 평균 전세금 규모가 2억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집주인이 계약 만료 시점에 전세금을 올리고 싶어도, 기껏해야 신혼부부의 연봉 인상분과 비슷한 수준밖에 올리지 못할 것이다. 세입자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금의 80%까지 대출이 가능해지며 해당 신혼부부는 이론상 7억원 전세에도 입주가 가능해졌다. 전세자금 대출 5억원에 기존 전세금 2억원을 더한 숫자다.
집 상태만 좋다면 집주인은 전세를 손쉽게 올릴 수 있다. 기존 세입자가 이를 거부하면 전세대출을 받는 다른 세입자를 받으면 그만이다. 높아진 전셋값은 결국 집값도 끌어올린다. 전세대출을 받아 인생 첫 단추를 끼운 신혼부부는 결국 빚은 빚대로 남고, 그사이에 집값은 급등해버렸으니 평생 전세 신세 면하기는 글렀다. 결국 이들의 최적 선택은 '영끌' 대출을 통한 집 장만으로 귀결된다.
최악의 경우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다. 영끌로 집을 장만한 이들은 그래도 집 한 채는 건졌다. 하지만 전세사기를 당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세사기범들의 편취 대금 중 상당 금액은 세입자들의 전세 대출금이었다고 한다.
답은 명확하다. '악마의 상품'으로 돌변한 전세대출을 궁극적으로 없애야 한다. 점진적으로 한도를 줄여나가는 것도 해법 중 하나다.
[한우람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엉뚱한 차에 ‘7만원 과태료’…주인이 따지자 경찰 황당한 변명 - 매일경제
- “골프 인기 한물갔죠~”…아파트·대학 동호회 난리난 ‘이 운동’ - 매일경제
- 김포·하남은 되고 우린 왜 안되냐…서울 편입 요구 봇물 터졌다 - 매일경제
- [단독] 다자녀가구에겐 혜택 퍼준다…고속도로 전용차선 허용 - 매일경제
- ‘교보증권 광클맨’ 누구길래 ··· 영풍제지 단타로 8억 벌었다 - 매일경제
- 직원 한명도 없는데 매출은 2배 늘어…편의점에 불어닥친 ‘무인화’ 바람 [르포] - 매일경제
- [단독] 아이 셋이면 고속도로 전용차선...다자녀 혜택 확대해 저출산 막는다 - 매일경제
- 이선균, 모발 검사 음성...“최소 10개월 마약 안 했다” - 매일경제
- “프로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비교 불가한 女투어 될 것” - 매일경제
- 김하성, 실버슬러거 NL 유틸리티 부문 최종 후보 선정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