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미래 K-컬처를 위해

2023. 11. 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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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사람들이 묻는다. 1950년대 전쟁 등으로 국민소득 1인당 90달러를 기록하던 나라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문화강국이 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방탄소년단 등 대중예술에서 시작된 K컬처 붐으로 세계인의 관심은 우리 전통예술·국악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전통예술에 기반한 국립극장 콘텐츠에도 세계 문화예술계가 주목하고 있다. 최근 해외 기관장과 미팅에서 그들이 보여준 호의적인 시선, 우리 공연에 대한 열띤 관심을 보고 있노라면 문전박대와 무시를 감내하며 공연을 홍보하던 과거가 떠오르며 감회가 새롭다.

국립극장은 그 변화의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다. 1950년,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에서 국립극단과 함께 창단해 1952년 한국전쟁 중에는 대구 문화극장에서 활동했다. 1957년 6월에 서울로 환도해 명동예술극장 시기를 거쳐 남산 장충동에 터를 잡은 것이 1973년이니, 올해로 꼭 50년이다.

돌이켜보면 1972년 12월, 서울시민회관이 문화방송 개국 11주년 기념 10대 가수 청백전 행사 도중 발생한 대형 화재로 사망 51명, 부상 76명이라는 엄청난 재난을 겪자 국립극장은 홀로 공연예술 중심 역할을 도맡았다. 또한 1974년 8·15 경축 행사 중에는 재일동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 저격을 시도하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사망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후 1978년에 세종문화회관이, 1988년에 예술의전당이 개관하며 각각 고유한 특색을 살린 한국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3대 공연장이 한국 기초예술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한편 남산 개관 당시 8개 전속 단체로 출발한 국립극장의 국립오페라단·국립발레단·국립합창단·국립극단 등이 차례로 재단 법인화라는 독립 수순을 밟으며, 국립극장에는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이라는 전통예술에 기반한 세 단체가 기거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와 굴곡의 역사에도 우리 예술이 꾸준히 성장한 배경에는 기초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 지원을 이어온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문화 선진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은 정부의 공연장 같은 인프라 확장 노력을 비롯해 문화예술진흥기금, 영화·문화 체육시설 관람 수입의 7%를 기금화해 지원하는 것과 같은 예술지원제도,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의 가치를 아는 기업에서의 지속적인 예술단체 후원·협찬이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보면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이 예전 같지 않다. 메세나 운동 또한 과거만큼 열성적이지 못한 현실을 보면 아쉬움이 크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에 기초예술 후원이 고루하고 지난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글로벌 문화예술 생태계의 중추적인 존재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예술가와 공연예술단체에 대한 투자는 필수다. 우리 전통이 특정 시대, 형식이나 장르로 박제되지 않고, 지금의 기초예술이 미래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의 보고로서 또 다른 전통,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선진 문화강국에 걸맞은 향후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지원·제도·후원 문화도 더 단단히 뿌리내리고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박인건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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