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광철, 무반주로 부른 '고향의 봄'…"전기도 없던 시골길 떠올라"

강진아 기자 2023. 11. 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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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당 20주년 기념 연광철 첫 한국 가곡집 발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성악가(베이스) 연광철이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풍월당 창립 20주년 한국가곡 '고향의 봄' 음반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3.11.0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묵직한 저음으로 천천히 읊조리듯 담담하게 불러간다. 피아노 반주 없이 오직 목소리로 들려준다. 세계 정상급 베이스 연광철이 부르는 '고향의 봄'이다. 클래식 음반점 풍월당 창립 20주년을 맞아 발매된 그의 첫 한국 가곡 음반 제목이자 마지막 곡으로 수록됐다. 오는 12월3일엔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가곡 독창회를 연다.

13살 때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바람결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풀벌레가 울어대는 시골길을 거닐며 느꼈던 정취가 새록새록하다. "'고향의 봄'은 충주 산골을 다니던, 있는 그대로의 내 이야기"라고 그는 말했다.

연광철은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번에 한국 가곡을 부르면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의 모습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종호(왼쪽) 풍월당 대표가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풍월당 창립 20주년 한국가곡 '고향의 봄' 음반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음반 '고향의 봄' 연주자 피아니스트 신미정과 노래한 성악가 연광철. 2023.11.03. pak7130@newsis.com

충북 청주공고와 청주대 음대를 나온 그는 지역 음대 출신 편견을 깨고 세계 무대를 활보한 성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독학으로 3개월간 공부해 청주대 음대에 들어갔고, 부친이 소를 판 돈으로 당시 다른 유럽 나라보다 물가가 쌌던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예술학교로 유학을 갔다.

이후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를 거쳐 1993년 오페랄리아 국제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전속가수로 활동했고, 1996년부터 '바그너의 성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단골로 출연했다. 2018년엔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으로부터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궁정 가수 칭호도 얻었다.

그렇게 30여년을 독일을 중심으로 베를린 슈타츠오퍼, 밀라노 라 스칼라, 런던 로열 오페라 등 세계 유명 오페라 극장을 누벼왔다. 수많은 오페라 무대에 서왔지만, 그 속에 그는 이방인이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2003년 문을 연 '풍월당'의 음반 매장. '풍월당'은 클래식음악과 오페라를 테마로 한 음반판매, 강연, 출판 및 여행 서비스, 클래식 뮤직 카페 등을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클래식이나 오페라를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즐거운 체험의 장이 되는 공간이다. 2023.11.03. pak7130@newsis.com

연광철은 "오랫동안 유럽에 살면서 그들의 작품과 음악, 문화를 해석하고 감동을 주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 하지만 사실 저의 정체성에 많은 혼란이 있었던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생각하면 사람마다 떠올리는 그림이 다 다를 거요. 제가 산골에 살면서 봤던 보름달의 느낌과 독일의 허허벌판에서 봤던 달은 같은 달이지만 다르죠. 제가 본 달빛은 그 시골의 달이었던 거죠. 외국에서 저는 이방인으로 그들의 음악을 했지만, 한국 사람으로 우리 가곡을 부를 땐 온전히 저희 것을 부르는 마음이었어요. 굉장히 편안하고 즐거웠어요."

이번 음반에는 1926년 나온 '고향의 봄'을 비롯해 '옛 동산에 올라'(1933), '진달래꽃'(1947), '비목'(1969), '청산에 살리라'(1973) 등 대표 가곡과 동시대 작곡가 김택수가 쓴 신작 '산속에서'(2023) 등 총 18곡이 담겼다. 그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고 가장 기본이 되는 곡들로 선정했다. 빠진 곡들도 있을 텐데, 이번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2003년 문을 연 '풍월당'의 음반 매장. '풍월당'은 클래식음악과 오페라를 테마로 한 음반판매, 강연, 출판 및 여행 서비스, 클래식 뮤직 카페 등을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클래식이나 오페라를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들에게 즐거운 체험의 장이 되는 공간이다. 2023.11.03. pak7130@newsis.com

"세계 여러 언어 중에서 우리나라 말처럼 노래하기 좋고 편안한 언어가 없어요. 서양인들이 한국어로 노래하는 게 맞냐고 할 정도죠. 한국 가곡은 시성을 떠나서 말할 수 없어요. 이번에 노래하면서 소리와 발성보다 시를 낭송하는 자세로 임했어요."

풍월당의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 가곡을 다시 듣고 부르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해외에 널리 알리고자 영어, 일본어, 독일어 3개 국어로도 번역했다. 2003년 클래식 전문 음반 매장으로 출발한 풍월당은 예술 아카데미와 예술 여행, 출판 등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이번 음반은 회원 200여명의 후원 등을 받아 첫 자체 제작했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20주년을 맞아 감개무량하다. 당시 레코드 가게가 하나둘 없어질 때 문을 열었는데, '음반이 없어지면 음악이 없어진다'는 게 제 모토였다. 작은 레코드 가게였지만 20년간 이 공간을 지켜온 게 감동"이라며 "오랫동안 우리 가슴을 적셔왔던 한국 가곡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음반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음반 표지는 고(故) 박서보 화백의 그림이다. 박서보 재단의 후원을 받아 박 화백의 단색화 '묘법 No.980308'을 디자인으로 활용했다. 박 화백 아들과 풍월당의 인연으로 박 화백이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다만 음반이 나오기 전 박 화백은 지난달 14일 별세했다. 박 대표는 "18곡의 한국 시를 새로 번역했고 여기에 어울리는 한국적 그림까지 넣어 한국 정서와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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