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74세때 19세 처녀와 결혼 위해 건강진단서 뗀 괴테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1. 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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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이 있는 인간은 방황한다" 외친 독일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여기에서 나는 사랑을 했고, 그리하여 사랑받으면서 행복했노라."

괴테는 참 많은 걸 누리고 간 사람이다. 왕실고문관이었던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괴테는 최고위층 집안에서 교양과 예술을 일찌감치 배웠다. 법대를 나와 22세에 변호사가 됐고, 3년 뒤인 1774년에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일약 유럽대륙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됐다. 그 이후엔 바이마르 공국의 장관으로 정치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그가 공직을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을 때는 성주들이 앞다퉈 그를 초청하려고 경쟁을 벌였다. 대단한 팬덤이 있었던 모양이다.

괴테는 말년도 만족스러웠다. 평생의 역작 '파우스트'를 완성해 놓고 당시로는 드물게 83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괴테에게는 여자도 많았다. 그는 무수한 여자와 사귀며 많은 글을 남겼다. 오죽하면 연구자들이 제대로 괴테를 알려면 그의 여성편력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했을까.

괴테는 사랑에 빠질 때마다 새로운 감성과 생명력을 습득했다. 그리고 영향을 준 여인들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파우스트'의 주인공 그레트헨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역 샤를로테가 대표적이다. 물론 두 사람 다 실존 인물이다. 그레트헨은 괴테가 열다섯 살 때 만난 첫사랑이었고, 샤를로테는 괴테가 법원에서 일하던 스물세 살 때 만난 결혼을 앞둔 여인이었다. 그레트헨은 대작 '파우스트'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주요 인물이고, 샤를로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존재하게 한 모티프이자 주인공이다.

괴테는 두 여성 외에도 여러 여성과 사귀었는데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도 많았다. 첫 결혼은 16세 연하인 크리스티아네 폰 불피우스와 했고 19세에는 어머니의 친구이자 26세나 연상인 주자네 폰 클레텐베르와 사귀었다. 74세에는 19세인 울리케 폰 레베초에게 청혼해 논란을 일으킨다. 청혼 소식을 들은 친구 카를 아우구스트가 "일흔넷에 열아홉 살 여자를 사랑하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조롱하자 괴테는 병원에 가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진단서까지 받아왔다. 그러나 결혼은 성사되지 않았다. 레베초의 집안에서 펄쩍 뛰고 괴테의 아들 아우구스트까지 반대하자 괴테는 마음을 접었다.

괴테는 문학 외에 지질학, 의학 등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괴테는 치아가 잇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치아의 뿌리가 역할을 하는 뼈대인 간악골(앞니뼈)을 발견했다. 지금도 영어권 치의학계에서는 간악골을 지칭할때 'Goethe's bone'이라고 부른다.

괴테는 도대체 인간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를 실험한 인물이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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