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물리학자의 일침 "美, 북핵 대응 안일했다"
실패 원인 분석해 시사점 도출
美정부, 당파적 이해 휩쓸려
북핵문제에 합리적 접근 안해
신냉전 구도서 핵무력 더 위협
참수작전·핵무장론 해법 안돼
"각하, 저는 제 손에 피가 묻은 것을 느낍니다."
원자폭탄을 개발한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45년 일본에 원자폭탄이 사용된 뒤 트루먼 대통령에게 실제로 한 말이다. 자신이 만든 폭탄 '리틀보이'(히로시마 투하)와 '팻맨'(나가사키 투하)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리틀보이와 팻맨 이후 핵무기 사용은 금기가 됐지만 일본과 바로 이웃한 한반도는 지금도 핵 위기를 겪고 있다.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후 현재까지 미국과 국제 사회의 제재에 맞서며 핵 무장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오펜하이머가 최초의 핵무기를 만든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11년간 소장(현 명예소장)을 지낸 핵물리학자이자 2004~2010년 7차례 방북하며 북한의 핵 시설을 둘러본 북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가 미국의 북핵 외교 정책을 분석·평가하는 저서 '핵의 변곡점'을 최근 출간했다.
책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중 경로 정책을 일관되게 펼쳐왔다고 분석하며, 미국이 북한의 이중 경로 정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북핵 위기를 풀기 위해 선의의 외교적 노력을 지속했으나 북한이 합의 위반을 거듭해 해결이 무산됐다는 통념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북핵 합의 무산에) 북한의 배신이 있었다는 믿음, 김씨 일가가 워싱턴을 '도발과 억지 요구와 보상'이 반복되는 교묘한 순환고리 안에 묶어놨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북한의 (핵 무장) 기술과 정치적 상황이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책은 구체적 사건과 정치인들의 발언, 성명서 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해 미국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합리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당파적 이해 관계 속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꼬집는다.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 북한의 이중 경로 정책에 대한 온전한 분석이 이뤄진 적이 거의 없었고, 정치적 전제나 우선순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책 입안자들이 제대로 된 분석을 찾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책은 미국이 북한의 이중 경로 전략에 대응하는 데 실패한 핵심 사건들을 북핵 위기의 '변곡점'(Hinge Points)으로 소개한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센터장을 지내고 엔리코페르미상(2009), 미국원자력학회 아이젠하워 메달(2017) 등을 받으며 과학적·외교적 업적을 인정받은 저자는 스스로 목격자이자 주역으로 경험한 북핵 위기의 핵심 사건들을 날카로운 분석과 함께 재구성한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3~2007년 6자회담, 2009년 북한의 위성 발사 시도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대응,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등의 의미와 실패 원인을 제시하고, 북한의 이중 경로 정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시사점을 도출한다.
책은 미·중 분쟁과 우·러 전쟁으로 신냉전 구도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 무력이 국제사회에 더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제기된 북한 지도부 참수 작전이나 독자적 핵무장론 역시 한반도 상황을 위태롭게 한다고 우려한다.
북핵 해결을 위해 저자가 희망을 거는 것은 북한 지도부의 전향적 결단이다. "김정은은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가 북한의 생존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으로 번영을 이룰 수는 없다. (북한이) 워싱턴 및 서울과 대화를 하려고 돌아서는 때가 온다면 과거의 쓰라린 교훈을 새기고 있어야 할 것이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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