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향하는 日 발목잡은 엔저

권진영 기자 2023. 11. 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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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시다, 의회 설득해 방위비 증액하기보다 장비 구매 줄일 듯'
미국은 中 견제력 떨어질까 우려…日 내 기업들은 수주 감소 우려
미국 화폐 100달러와 일본 화폐 1천엔 지폐.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일본이 엔화 약세로 인해 앞으로 5년간 방위비를 43조5000억 엔(약 382조6870억 원) 더 증액하는 계획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로이터통신이 3일(현지시간)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2월 방위비 확대 계획이 발표된 이후 엔화 가치는 미 달러 대비 약 10% 하락했다. 미국 무기 수입 지출 부담이 늘어난 만큼, 방위비 확대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위비 조달 관련 정부 관계자 3명과 업계 소식통 5명에 따르면 일본은 엔저로 인해 방위비 확대 2년 차인 2024년부터 항공기 구매량을 줄이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가 엔저로 인해 방위비 확대 규모를 축소하게 된 구체적 정황이 보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애초에 일본 정부는 1달러 대비 108엔의 환율을 가정해 놓고 방위비 확대 예산안을 짰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초완화 통화 정책 고수로 이후 달러·엔 환율은 151엔까지 상승(엔화 약세)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대기업과 달리 일본 방위성은 환율 변동에 대해 대비하지 않는다며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과 F-35 스텔스 전투기 부담이 커지는 것을 완화할 수단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2003년 3월 지중해를 항해하는 미국 해군 순양함 케이프 세인트 조지에서 함대지 순항 미사일 '토마호크'가 발사되는 모습. 2023.3.23.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일본통인 크리스토퍼 존 스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국방 전문가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군사비 지출 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징후가 미국에 불안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 동맹인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는 힘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로서는 영향이 크지 않다"면서도 "장기적인 엔저가 일본의 방위력 증강을 약화하고 병력 감축시키며 무기 감지를 지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방위성은 로이터에 방위비 확대 계획과 관련한 세부 사항은 밝힐 수 없다고만 했다. 도쿄 주재 미 대사관이나 미 국방부 역시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방위비 확대 계획이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규모로 따지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급이다.

방위성이 발간한 방위백서에 따르면 늘어난 방위 예산은 동중국해 인근을 따라 대만까지의 해역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 내 미군기지는 대만 유사시 중국군에 대한 반격을 수행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 정부는 이때 미군을 보호할 책임을 공유한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사령부)가 미공개 장소에서 대만해협을 향해 장거리 실탄 훈련을 하고 있다. 2022.8.5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앞서 중국은 일본의 방위비 확대 계획에 대해 "냉전적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우려를 드러냈다.

한편 8명의 관계자는 일본이 예산 삭감으로 미사일과 같은 미국산 첨단 최전방 무기를 우선적으로 구매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상대적으로 지출이 줄어들 품목으로는 지원기를 비롯해 기타 보조 키트를 뽑았으며 이 중 대부분은 일본 기업이 생산한다.

지난해 12월 방위성 관리들은 대단 150억 엔(약 1319억 원)에 틔윈 로터 치누크 수송 헬기 34대를 주문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수송 헬기는 보잉사의 라이선스를 보유한 가와사키 중공업이 조립한다.

하지만 지난 8월 발표된 2024년 4월로 예정된 방위 예산 요청서에는 12월 이후 항공기 가격이 약 50억 엔씩 상승했기 때문에 주문 대수가 17대로 절반가량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논의에 직접 참여한 정부 소식통 중 한 명은 가격 상승 요인의 절반은 엔저 현상 때문이라고 했다. 조립사인 가와사키 측 대변인도 단가 인상으로 인해 치누크 수송 헬기 주문량이 감소했다고 했다.

아울러 관계자 두 명에 따르면 수색 및 구조 임무에 사용되는 신메이와 공업주식회사의 US-2 수상 비행기 2대를 구매하려던 계획은 아예 취소됐다. 3년 전 당초 계획보다 대당 가격이 300억 엔(약 2640억 엔)으로 두 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신메이와 측 관계자는 "가격이 상당히 상승했다. 엔저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비용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 방위성이 수상비행기 주문을 취소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갔다.

한편 분석가들은 기시다 총리에게는 장비 구매를 줄이는 것이 국회에 방위비 증액을 요청하는 것보다 정치적 리스크가 적을 것으로 예측한다.

퇴역한 해상자위대 제독 요지 고다는 "기시다 총리가 예산 증액을 결정할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는 일본 내 지지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납세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설득하는 것보다 쉬운 조달 삭감이나 연기를 선택할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3일(현지시간) 도쿄에서 열린 임시국회에서 정책 연설을 하고 있다. 2023.10.23 ⓒ AFP=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일각에서는 엔저로 인한 예산 감소를 우려하는 일본 내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본 내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로비 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는 지난 10월25일 추가경정예산에 추가 군사 조달 자금을 편성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서한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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