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선박’ 드나들며 분주한 나진항…“핵·전략무기 이전은 막아야”

양민철 2023. 11. 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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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위성 사진으로 베일에 싸인 북한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연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상업위성 플래닛랩스의 고해상도 위성 사진을 활용하는데, 지상의 가로 세로 0.5 미터 크기 물체의 식별이 가능한, 기본적인 군용 정찰위성 수준입니다. 대상 선정과 분석 작업은 전문가 자문단을 꾸려 연중 함께 합니다. 이번 순서에선 미 백악관이 북러 간 무기 거래 현장으로 지목한 북한 나진항에, 구체적으로 어떤 배들이 드나들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북러 무기 거래 중심 '나진항'…10월 들어 대형 선박 움직임 활발

과거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석탄의 수출 창구로 이용됐다가, 지난 몇 년간은 선박 활동이 뜸해졌던 북한 나진항. 최근 나진항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북한이 러시아에 군수 물자를 지원한 근거'라며 미 백악관이 컨테이너 수백 개가 쌓인 지난 9월 초 당시의 나진항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선박과 열차를 통해 포탄 등 무기가 담겨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컨테이너들이 러시아로 건너갔다는 주장인데,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듯 지난달 들어 나진항에 다시 대형 선박이 활발하게 드나들고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대형 선박이 나진항의 세 부두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부두에 정박합니다.


이튿날 이 선박은 화물이 비워진 채 아래쪽 북한 전용 부두로 자리를 옮긴 뒤, 그다음 날 사라집니다.


이 선박은 이때로부터 2주쯤 전인 지난달 12일에도 나진항을 찾았는데, 영국 씽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이 선박을 러시아 국적의 '마리아(MARIA)'호라고 지목했습니다.


마리아호 외에도 지난 10월 한 달간 여러번 나진항을 찾은 배는 두 척이 더 있었습니다.

지난달 23일엔 또 다른 대형 선박이 나진항 북한 전용 부두에 정박해 하역 작업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는 이 선박이 앞서 백악관이 북러 무기 거래에 활용된 것으로 지목한 러시아 선박, '앙가라(ANGARA)'호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지난달 7일에 나진항을 찾은 선박은, 또 다른 러시아 선박인 '레이디R(LADY R)'호라고 지목했습니다.


이 선박들은 먼저 가장 북쪽 부두에 들러서 싣고 온 짐을 내린 뒤, 바로 옆 북한 전용 부두로 이동해 그곳에 쌓인 화물을 싣고 사라지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러시아에서 식량 등 물자를 싣고 와 내려놓고, 옆 부두에 준비돼 있던 무기 등 군수물자가 담긴 컨테이너들을 싣고 돌아갔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와 관련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보유한 컨테이너 물량에 한계가 있을 수 있어, 러시아 측이 (원활한 무기 지원을 받기 위해) 빈 컨테이너를 제공해줬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 "나진항 드나든 선박, '미국 제재' 대상"

문제는 이 선박들이 단순히 러시아 국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앙가라호와 레이디R호는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를 위한 무기를 운송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미국 정부의 제재 명단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앙가라호의 경우 지난해 5월 미 재무부와 국무부 등이 러시아 여러 기업과 개인을 무더기로 제재할 당시 앙가라호를 소유한 러시아 해운회사 '엠 리징(M Leasing)'과, 이 회사 소유의 다른 2척의 선박인 애들러(ADLER)와 애스칼런(ASCALON) 호와 함께 제재 대상이 됐습니다.

남아공 레이디R호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는 레이디R호의 모습.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러시아 해운사 'MG-플로트(MG-Flot)' 소유의 상선인 레이디R호 역시, 러시아를 위해 무기를 실어나른 혐의로 지난해 5월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선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레이디R호는 제재 명단에 오른 뒤인 지난해 12월 초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이먼스타운의 해군 기지에 은밀히 정박해 이틀 밤 동안 정체불명의 화물을 몰래 하역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당시 레이디R호는 남아공을 떠난 뒤 모잠비크, 터키 이스탄불 등을 거쳐서 러시아로 돌아간 바 있습니다.

■ "러시아가 '선 넘게' 해선 안 돼…핵·전략 무기 기술 이전 막아야"

이렇듯 북러간 무기 거래 의혹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만큼 추가 제재 등 국제사회의 강제 조치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입니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안보리에서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당사국인 만큼, 당연히 (제재 결의안이) 올라가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한·미·일이 독자 제재를 할 가능성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현재 상황에서는 북한이 포탄을 러시아에 지원하는 걸 완전히 막지 못하더라도, 그 대가로 북한이 핵·전략 무기 관련 핵심 기술을 이전받는 것만큼은 막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현실론도 제기됐습니다.

북한이 전술핵 공격 잠수함으로 주장한 '김군옥영웅함'의 모습. [사진 출처 : 조선중앙TV]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는 과거 냉전 체제에서도 우방국에 핵이나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등 첨단 기술을 준 적이 없다"며 "(포탄의 대가로는) 식량, 에너지, 비료, 광물 자원 등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만에 하나 러시아가 핵·전략 무기 관련 기술을 북한에 넘겨서 북한 핵 능력이 고도화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며 "러시아가 '선'을 넘지 않도록, 공개적·비공개적인 차원에서 (외교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박 교수도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무기·기술을 제공해준다는 명백한 증거가 드러나면, 한국에 있어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며 "이 경우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기존 한국 정부의 입장도 재검토될 수 있고, 이것은 러시아에 있어 큰 압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러시아는 단순히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측면에서 북한의 무기를 지원받는 것이지만,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지원한다면 전장의 판도는 완전히 바뀔 수 있다"면서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기술·무기 지원 시) 한국은 모든 선택지를 열어둬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카드'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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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철 기자 (manofstee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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