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피곤해요"…입에 달고 사는 우리 아이 '지방간'이었다?
간(肝)은 우리 몸의 '해독 공장'이다. 체내 유입되는 독소와 노폐물의 70% 이상을 간이 처리한다. 간은 해독작용뿐 아니라 탄수화물과 지방, 아미노산의 대사 및 합성, 에너지 저장 등 500가지가 넘는 일을 책임지는 '화학 공장'이기도 하다. "피로는 간 때문이야"라는 익숙한 노래가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간 손상의 시발점이 되는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지방간이다. 간세포에 지방이 5% 이상 쌓이는 병으로, 크게 술을 마셔 생기는 '알코올성 지방간'과 체내 잉여 지방이 쌓여 생기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흔하다. 한국인 10명 중 2~3명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추정된다. 이문형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그 자체로는 대부분 증상이 없다"며 "건강검진 등으로 우연히 찾아내도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비율은 2~3%에 그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간을 단순히 '뚱뚱한 간'이라며 쉽게 봐선 안 된다. 지방간은 수십 년에 걸쳐 간염→간경변→간암으로 악화해 조기 관리가 필수다. 암을 비롯해 심장병과도 연관이 있다. 강동경희대병원에 따르면 지방간이 심해질수록 간암은 17배, 대장암은 2배, 관상동맥질환의 발생 위험은 4배가량 높아진다. 담배를 피우면 위험이 배가된다. 이 교수는 "흡연은 심혈관질환, 암, 당뇨병 등 만성질환 외에도 간암과 만성 간질환을 유발·악화하는 요인"이라며 "비알코올성 지방간인데 담배를 피우면 비흡연자보다 췌장암 발병 위험이 42% 더 높다는 연구도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비단 어른뿐 아니라 소아·청소년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걸리는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환자 집계를 보면 2019년 병원에서 지방간을 진단받은 10대 이하 소아·청소년은 1만2917명이었는데 2021년에는 1만6780명으로 30%가량 껑충 뛰었다. 서구화된 식습관에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운동 부족이 맞물려 비만 유병률이 높아졌고 지방간 증가로 이어졌다.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과체중·비만 학생 비율은 30.5%로 2019년(25.8%)보다 4.7%포인트 증가했다.
소아·청소년은 성인보다 지방간이 진행하는 속도가 빠르고 유병 기간도 더 길다. 간경변·간암 등 간질환으로 진행할 위험이 성인보다 더 크다는 의미다. 비만 외에도 바이러스 감염, 유전대사 질환, 다른 만성질환 등도 지방간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데, 아이들은 자기표현이 서툴다 보니 이를 방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로를 심하게 느끼거나 비만한 경우, 잘 때 코를 고는 '폐쇄성 무호흡증'이 있는 아이는 복부 초음파나 간 MRI, 혈액 검사 등을 한 번쯤 받는 게 좋다.
지방간은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다. 잘못된 식습관을 바로잡고 주 3~4회 이상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는 등 생활 습관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다만 극단적으로 살을 빼다간 오히려 지방간이 악화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 교수는 "체중이 5% 감소하면 간의 지방량이 줄고, 10% 감소하면 간 섬유화도 개선된다"면서도 "하지만 1주일에 1㎏ 이상 급격히 살을 빼면 오히려 지방간이 악화하고 간부전, 섬유화가 촉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살이 너무 쪄 지방간을 비롯해 고혈압·고지혈증 등 동반 질환이 조절되지 않는다면 성인은 물론 아이도 비만 대사 수술을 고려해야 할 수 있다.
식습관 개선은 단순히 음식을 적게 먹는 것이 아닌 섭취하는 영양소의 종류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세 끼를 챙겨 먹되 한 끼의 분량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칼로리가 같다면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밥상에 올리는 식이다. 김태형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장기 소아·청소년은 살을 빼겠다고 무조건 금식해선 안 된다"며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와 야식, 당분이 많은 탄산음료 섭취를 줄이면서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함유된 규칙적인 식단을 꾸리는 것이 권장된다"고 조언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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