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이 KBS를 찾아간 건 참으로 영민한 전략이다('골든걸스')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3. 11. 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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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와 맞붙은 박진영의 과감한 도전(‘골든걸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시작했다. 과거 주말 프라임타임 예능의 아성을 넘겨받은 금요일밤 KBS2가 신규 예능으로 <골든걸스>를 편성했다. 이 프로그램은 K-컬쳐의 시대를 맞이해 인순이, 이은미, 박미경, 신효범이라는 1990년대를 풍미한 당시 표현이자 일본식 조어인 '기라성' 같은 보컬리스트를 아이돌 콘셉트으로 조합해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담은 리얼 버라이어티다. 음원, 콘서트 활동과 같은 부가수익은 물론 SNS 바이럴이 가능한 음악예능으로, 그 과정에서 방송에서 뜸했던 대가들이 요즘의 감성과 조우하는 무한한 능력을 재발견하는 기쁨과 기대가 재미의 핵심이다. MBC <나 혼자 산다>와 경쟁했음에도 1회부터 이미 4%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원더걸스와 골든에라에서 따온 듯한 <골든걸스>의 시작은 박진영이다. 요리예능의 백종원과 마찬가지로 화자이자 진행자이며 핵심 콘텐츠 제공자다. 그는 이 방송이 JYP의 이해와는 무관한 개인 활동임을 수차례 강조한다. 지금 하는 일도 재밌지만 보다 가슴이 울리는 일을 찾아 R&B와 소울 등의 음악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선배들을 오늘날 현재의 인물로 재탄생시키겠다며 신이 났다. 제작진과 함께 신효범을 시작으로 한 명씩 찾아가 강하게 설득한다.

<골든걸스>는 솔로 디바로 수십 년간 활동한 레전드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재탄생한다는 기획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박진영이 택한 파트너가 KBS2라는 데 큰 관전 포인트가 있다. 그가 직접 방송사를 찾아가 성사시킨 기획이라는데, 그 어떤 힙한 유튜브 채널도, 심사위원 등으로 출연했던 방송사나 리얼버라이어티 타입의 음악예능에 노하우가 깊은 채널이나 스타 PD도 아닌 KBS2를 찾아갔다는 점이 전략적으로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다시 말해, 기대하는 골, 타깃, 목적, 서사가 분명한 예능이다. TV, 출판 등 기존 미디어의 주요 소비층의 연령이 높아진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최근 두드러지는 소비층인 50대를 구체적인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트로트가 노년층 시청자가 많은 TV조선에서 터졌듯이 <불후의 명곡> 등을 품고 있는 KBS2는 확실히 레전드들의 품격을 이해해줄 잘 찾아간 번지수이긴 하다.

그런데, 출연자들은 모두 주저한다. 오랜만에 방송의 부름이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 아닌 데다, 건강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새로운 도전을 선뜻 나서지 못하게 한다.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지금의 평온한 일상이나 콘서트와 행사 공연 등 비즈니스 모델을 뒤흔드는 변화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다. 하지만 집요하고 강하고, 논리적이고 진정성 있는 박진영의 설득 끝에 새로운 도전을 기회로 삼기로 한다.

오랜 친구들과 오래도록 지키지 못한 약속을 위해서 승낙한 이은미도 있지만, 유튜브 코미디 콘텐츠인 <모창가수의 길>을 통해 이름이 회자될 뿐, 가수로 활동하지 않고 있는 박미경이나 스스로 백수라 칭하는 신효범, 인순이 등은 기회를 놓치는 후회보단 실패해도 저지르는 도전을 택한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중년들의 두려움과 설렘은 위치나 상황은 다를지라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장면이다.

신효범은 주방에서 파를 다듬으면서 익숙지 않은 아이돌 노래를 연습하고, 박미경은 오랜만에 연습실에 나가 녹슬어 있던 기량을 연마한다. 이는 얼마 전 이효리, 엄정화가 보여줬던 이야기의 심화편이라 할 수 있다. 레전드들조차 과거의 명성에 머물지 않고 시대와 감응하기 위해 펼치는 노력은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세대와 시대를 불문하고 뚫고 나오는 재능의 존재는 보는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로 다가간다.

게다가 중장년 콘텐츠는 확장성이란 의외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아이돌 음악을 즐기는 세대에게는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부르는 인순이는 놀라운 광경이 될 수 있다. 뉴트로 무드가 전 세계적으로 수년째 강세를 띠고 있고, 특히 우리 Z세대의 경우 문화적 주체성이 무척 높아, 우리의 과거가 덮거나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재발견의 무궁무진한 아카이브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레전드들이 과연 오늘날 아이돌 스타일의 음악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바이럴의 가능성이 큰 환경이다. 이미 1회에서 신효범과 박미경은 트와이스와 아이브의 노래를 자신의 방식으로 부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문제는 이야기다. 뚜렷한 목표와 기대가 확실한 데서 오는 장점도 있지만, 그 과정이 뻔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다시 말해 그 과정을 이루는 이야기가 그만큼 재밌어야 한다는 뜻이다. 1회의 첫 무대들이 궁금하긴 했지만 한 명 한 명 찾아가 설득하는 과정, 새로운 도전에 대한 고민을 인터뷰하는 방식은 꽤나 평범하고 수수한 다큐 같았다.

과연 이들이 합숙을 하면서 보여줄 새 노래, 그리고 그들의 진정성이란 어떤 공감의 방식일까. 익히 알아온 맨발의 디바 이은미나 1950년대생인 인순이의 합숙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무대를 뒷받침할 서사를 어떻게 꿰어낼 수 있을까. 뛰어난 기획자이자 사업가인 박진영이 동년배들인 중장년층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그의 호언장담을 KBS2라는 파트너가 예능의 방식으로 잘 받쳐줄 것인가? 3040의 리추얼이 된 <나 혼자 산다>가 자리한 금요일 밤에 또 다른 세대를 위한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막을 올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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