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돋보기]③ 3배로 늘어난 국제 협력 사업…파트너 못 찾아 ‘눈먼 돈’
상대국 미정이거나 협의 단계인 사업에도 예산 배정
대통령 지시에 무리하게 사업 늘렸다는 지적 나와
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윤석열 정부의 관료들이 윤 대통령이 과학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걸 이야기하면서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게 있다. 바로 해외 순방 때마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일정을 빼놓지 않고 챙긴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해외 방문 때마다 현지 과학기술계 석학이나 유수의 연구기관을 꼭 방문했다. 작년 9월에는 캐나다를 방문해 인공지능(AI) 석학들을 만났고, 올해 1월에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를 방문해 양자 분야의 석학들과 대화를 나눴다. 올해 4월에는 미국 워싱턴DC 인근의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와 보스턴의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방문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미래 산업인 우주와 첨단바이오 1번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립과학기술원을 찾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해외 과학 행보는 이번 연구개발(R&D) 예산안 사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R&D 예산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국제협력에 많은 예산을 배정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그대로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됐다. 올해 국제협력 R&D 예산은 5000억원 수준이었는데, 내년도 예산안에는 1조8000억원으로 무려 1조3000억원이 늘었다. 전체 R&D 예산이 16.6% 삭감되는 와중에 국제협력 예산은 3배가 늘어난 것이다.
국제협력 R&D 사업 대부분이 올해 없던 사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바이오의료기술개발 사업은 내년에 297억2500만원의 예산이 배정됐는데 새로 시작되는 사업이다. 보건복지부의 보스턴코리아 혁신연구지원 사업 등에도 604억원이 배정됐는데 역시 신규 사업이다. 기존 사업인 해외우수연구기관 협력 허브 구축 사업은 올해 69억원이던 예산이 내년에는 196억원으로 늘었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국제협력 사업들 가운데 파트너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업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과기정통부의 해외우수연구기관 협력 허브 구축 사업 가운데 ‘탑티어 연구기관 간 협력 플랫폼 구축 및 공동연구 지원’ 사업은 1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지만 아직 어떤 국가와 협력을 할 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제협력을 강화한다고 예산부터 배정해놓고 파트너를 찾고 있는 셈이다.
신규로 예산이 배정된 국제협력 R&D 사업 가운데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과기정통부의 디지털혁신기술 국제 공동연구 사업도 마찬가지로 상대국이 정해지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인력양성 사업과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기술연구개발 사업도 같은 처지다.
상대국은 정해졌지만 양해각서(MOU) 체결도 하지 못한 사업도 태반이다. 과기정통부의 반도체 글로벌 첨단 팹 연계 활용 사업은 미국, 벨기에, 프랑스와 함께 하기로 했지만 아직 MOU도 맺지 못 했다. 해양수산부의 해양방사능 오염사고 대비 신속탐지·예측기술 개발 사업은 태평양 도서국과 함께 한다는 것만 정해놓고 구체적인 내용은 ‘협의 중’인 상태다.
전문가들은 파트너도 없는 상태에서 예산부터 배정하는 건 국제협력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진성호 재영한인과학기술자협회 회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예산이 늘어난다고 협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라며 “상호 간에 이해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협력이 쉽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해외 협력은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도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국제협력 업무를 많이 맡아온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웬만한 국제협력 사업은 MOU 체결까지만 2, 3년은 협의가 필요하고, MOU 체결 이후에도 몇 년에 걸쳐 협의를 해야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는 게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같은 지적을 했다. 예산정책처는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국제협력 사업은 상대국이 정해진 이후에도 구체적인 연구범위를 합의하는 데 상당 기간이 소요되고, 상대국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협력이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며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된 국제협력 R&D 사업은 상대국과의 협의 진행 상황 등 사전준비 현황을 면밀히 검토해 적정 규모로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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