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임신과 중절”을 갈망하는 이야기 ‘헌치백’[책과 삶]
이치카와 사오 지음 | 양윤옥 옮김 | 허블 | 140쪽 | 1만2000원
중증 장애인의 날 것 그대로 ‘성적 욕망’ 표현
일 최고 권위 ‘아쿠타가와상’ 수상
김초엽 “온몸으로 돌진하는 소설” 평가
샤카는 한마디로 ‘건물주’다. 본인 명의 땅과 건물에 살고 있고, 또 다른 건물에서 임대료가 들어온다. 부모에게 상속받은 거액의 현금 자산은 그대로 여기저기 은행에 남아 있다. 식사와 세탁, 청소 등 기본적인 것도 누군가 도맡아 해준다.
세상이 부러워할 법한 재력을 지녔지만 그 세상에 발을 내디뎌 걸을 근육은 없었다. 샤카는 중증 장애인이다. 병명은 근세관성 근병증. 척추가 휘어 두 발로 걸을 수 없고 근력이 약해져 심폐 기능까지 떨어진다. 인공호흡 장치와 담을 빼내는 흡인기 없이는 혼자 숨 쉬기 힘들다. 그의 부모는 죽기 전 절대적으로 샤카를 돌볼 사람을 지정하고, 요양원 같은 그룹홈을 만들었다. 그리고 세상과 마주하지 않고 마찰 없이도 충분히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경제적 울타리를 마련해놨다. 샤카는 일할 필요가 없는데도 성인 소설과 잡다한 기사를 써서 푼돈을 벌고 그걸 불우이웃에 기부하며 살아간다.
‘평범한 여자 사람처럼
아이를 임신하고
중절해보는 게
나의 꿈입니다’.
소설 <헌치백>의 과묵한 주인공 샤카(釋華)에게는 또 다른 ‘샤카(紗花)’가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샤카(紗花)는 일상의 평범함을 갈망하고 세상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은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저 친구들처럼 누군가와 만났다 아이를 낳고 헤어지고 다시 사랑하는 평범함을 바랄 뿐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샤카는 “돈으로 마찰에서 멀어진 여자에서, 마찰로 돈을 버는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중증 여성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 <헌치백>은 지난 7월 일본 순수문학 최고 권위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중증 장애인의 성에 관한 언급은 문학이나 영화나 신문기사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장애인은, 또 장애 여성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의 존재로 취급받는다.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위한 그 무엇은 그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작가 자신의 장애인 당사자성을 드러낸 작품인 <헌치백>이 크게 주목받은 이유다. 주인공의 장애라든지 글을 기고하고, 대학의 통신과정을 수강하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각인되기 위한 ‘발버둥’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저자는 지난 20년간 재벌가 며느리 이야기, 판타지 등의 소설을 여러차례 응모해왔다.
작가 이치카와 사오는 수상소감에서 “<헌치백>은 거의 단번에 써 내려간 작품이라서 의식할 만한 시행착오라는 것도 없고 제 감각과 머릿속 이미지를 그대로 출력해낸 느낌”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와세다대의 온라인 교육과정 졸업논문이 소설 출발점이라고 했다. ‘장애인 표상 역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정형적 분석’. 저자는 “스토리에 있어서 장애인에게는 항상 뭔가의 (대부분 스테레오타입의) 역할이 떠맡겨진다”며 “아무 의미 없이 행인 A로서 신체 장애인이 묘사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샤카의 간병인은 주로 여성이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사람이 부족했다. 목욕하는 날, 어쩔 수 없이 남성 간병인 다나카가 온다. “장애인은 성적 존재가 아니다. 사회가 만든 그 정의에 나는 동의했다. 우선 내게 편리한 대로 거짓으로 동의했다. 마스크가 얼굴을 감춰주는 시절. 거짓을 들키지 않을 만큼은.” 샤카는 욕망하는 존재였다. 인간이니까.
다나카는 샤카의 등, 왼쪽 다리, 오른쪽 다리에 비누칠을 한다. 침대 시트를 깔면서 다나카는 샤카의 SNS 계정 ‘샤카’가 쓴 메시지를 묻는다. 그는 ‘샤카’를 알고 있었고, ‘샤카’를 경멸했다.
“얼마를 원해요?”
“1억엔.” 샤카는 ‘귀여운 금액’이라고 했다.
“1억5500만엔은 어때요? 다나카씨의 키만큼이에요. 1센티미터당 100만엔. 당신의 비장애인 몸에 가격을 매긴 거예요.”
샤카는 돈을 가진 자로서 ‘위악’을 떤다. 침대로 다가온 다나카의 얼굴엔 비웃음이 보였다. 구강성교 후 미끈한 점액 탓에 샤카는 거친 기침을 토해낸다. 다음날 샤카는 열이 오르고 대학병원에 실려 간다. 다나카는 “죽을 뻔하면서까지 할 일입니까?”라며 경멸감을 드러낸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서랍 속 1억5500만엔이 쓰인 수표 용지는 그대로 놓여 있다.
소설 속 문장들은 장애인에게 임신할 권리를 주지 않았던 일본의 굴절된, 생채기 같은 역사도 드러낸다. 일본에선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이른바 우월한 생명체 보호를 명목으로 유전적 질병의 경우에는 불임수술이나 임신중지(중절)를 통해 단종을 강제한 ‘우생보호법’이 있었다. 1974년 우생보호법 개정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중 도쿄 국립박물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특별전시회에서 혼잡하다는 이유로 ‘장애인과 유아 동반자 입장을 삼가달라’는 발표가 나온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여성 장애인 요네즈 도모코는 항의 표시로 ‘모나리자’ 그림 유리 케이스에 빨간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는 일본에서 여성 장애인 운동에 헌신한 1세대 활동가다.
“다나카씨는 돈을 위해서라고 체념하고 중증 장애 여성의 입욕 간병인 일을 하러 왔고, 보고 싶지도 않은 기형의 몸을 씻는 동안에도 돈 덩어리를 닦고 있다는 마음이었던 것이리라. 부모님의 유산으로 먹고 사는 나란 인간이 불로소득의 돈 덩어리쯤으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손에 들어오지 않는 돈이다. 그의 말은 빨간 스프레이인 것이다.”
‘장애인=무성의 존재’ 취급하는
비장애인 편견에 뿌리는 ‘빨간 스프레이’
<헌치백>은 말미에 샤카가 아르바이트로 쓴 소설을 통해 비장애인의 편견에 ‘빨간 스프레이’를 다시 한번 뿌린다. 명문대 문학부 여대생 ‘샤카’는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업소에서 일한다. 그는 상대하는 남성에게 지어낸 가족 이야기를 한다. 그에게 그 이야기는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아남기 위한 방도’였다. 성매수 남성은 “혹시라도 바보같이 싱글맘이 되어서 빈곤을 재생산하지 않도록 조심해”라고 어쭙잖은 걱정을 하며 사정한다. 작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진흙탕 속에 하얗게 빛나는 생명의 씨앗이 떨어진다. 샤카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죽이고자 했던 아이를 언젠가/지금 나는 잉태할 것이다.”
저자는 소설과 그 안의 소설을 통해 자신이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소리친다. 소설가 김초엽은 <헌치백>을 두고 “장애의 물질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온몸으로 돌진하는 소설. 냉소적인 독설에서 해방감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원고를 보고 낯부끄럽다며 “이런 창피한 얘기로 아쿠타가와상을 타서 뭐 할 건데!”라고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책에는 성적 은어와 인터넷 용어 등이 자주 등장한다. 100쪽 남짓한 책에 이를 설명하는 각주가 52개다. 중증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날것 자체로 표현하고 싶은 저자의 열망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장애인의 시선으로 비장애인을 신선한 방식으로 도발하는 책이다.
내용만큼이나 한국어판 표지의 구부러진 붉은 양귀비 꽃은 인상적이다. 출판사 허블은 “굽은 가지와 그 끝에 활짝 핀 커다란 붉은 꽃은 뜨겁고 선연한 욕망을 지닌 샤카의 은유”라고 설명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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