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 ‘서울민국’을 꿈꾸나 [김민아의 훅hook]

김민아 기자 2023. 11. 3. 11: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서울민국헌법’

“제1조 ①서울민국은 도시공화국이다. ②서울민국의 주권은 서울시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서울시민으로부터 나온다.”

“제2조 ①서울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②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서울시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제3조 서울민국의 영토는 서울과 그 부속도서로 한다.”

집권세력이 꿈꾸는 ‘메가시티 서울’의 미래는 이런 건가. 김포를 시작으로 구리·고양·부천·광명·하남까지 다 서울로 밀어넣을 텐가. 일일이 편입시키려면 절차가 복잡할 터다. 차라리 헌법을 개정해 전국을 서울 단일지역으로 묶고 도시국가를 선포하면 어떤가. 이참에 국호와 영토 조항도 개정하고.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김포(를 비롯한 모든 지역) 시민의 요구는 정당하다. 지금 김포 시민의 가장 큰 고통은 열악한 교통이다. ‘지옥철’ 김포골드라인 문제 해결이 급선무다. 현재로선 서울지하철 5호선 연장이 가장 현실적 해법이라고 한다. 김포시, 경기도, 서울시, 중앙정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노선 연장이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질 순 없다. 버스도 계속 늘려야 한다. 교통망 확충을 준비하는 기간엔, 서울로 통근하는 김포 시민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나 시차출퇴근제를 시행해보자. 사기업에 강제하긴 어려울 것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중 대민 업무를 맡지 않은 사람부터 해보면 어떨까. 코로나19 사태도 끝났는데 뜬금없이 웬 재택근무냐고? 코로나19 때 해봤으니 다시 해볼 수 있는 거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뭔가.

지난달 30일 김포골드라인을 관리하는 김포한강차량기지에서 정비사들이 열차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왜 이런 이야기는 안 하는 걸까. 무조건 ‘서울로 드루와 드루와’만 외치는 걸까. 김포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 인격체라기보다 ‘한 표’로 봐서 그럴 거다. ‘집값 올려준다면 싫어할 사람 없지’ 하는 속내가 읽힌다. 너무 투명해서 보기 민망하다.

시대 흐름과 인구·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행정구역 개편은 필요하다. 그러나 A시를 B시에 편입시키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 전 지역을 대상으로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하고, 국가의 미래상에 부합하는 그랜드 디자인을 해야 한다. 총선을 5개월 앞두고 번갯불에 콩 볶듯 할 일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2일 발표한 ‘지역 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는 시사점을 준다. 한국 인구의 과반(50.6%)이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몰려 산다. 한국의 수도권 비중은 202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중 가장 크다. 수도권·비수도권의 월평균 실질임금 격차는 53만원, 고용률 격차는 6.7%포인트에 이른다.

한은은 “현재의 일극체제는 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무한경쟁 부담을 감수하고 수도권으로 이동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출생 문제의 주원인도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데 있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출산을 늦추기 때문이다. 한은이 제시한 해법은 서울 확장이 아니다. ‘비수도권 거점도시’ 육성이다.

국민의힘은 서울 확장을 ‘메가 서울’이란 표현으로 분식하려 한다. 하지만 서울은 이미 ‘슈퍼 울트라 메가’ 급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사람과 돈을 빨아들이는 사이, 비수도권 지역은 소멸 위기에서 신음하고 있다. 전국 시군구의 40%가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된 터다. 서울을 더 ‘메가’하게 만들겠다면, 그건 서울과 인접지역을 제외한 나머지를 버리겠다는 신호나 매한가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달 30일 김포한강차량기지에서 열린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마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2일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추진키로 하고 특위까지 구성했다. 그런데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은 대전에서 열린 ‘지방시대 엑스포’와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우리 다 함께 잘살아 보자”고 외쳤다. 전날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4대 특구 지정 등 지역발전계획을 담은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집권세력의 생각은 도대체 뭔가. 국민은 어지럽다.

윤 대통령이 지난 1일 타운홀 미팅 형식의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정치 과잉” “정치 과잉 시대”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정치’는 ‘정쟁’을 지칭한 것이리라 짐작한다. 대안 없는 정쟁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주권자를 ‘표’가 아닌 ‘사람’으로 존중하고 대우하는 ‘진짜 정치’는 차고 흘러 넘쳐야 한다. 수도권 시민이 통근길에 ‘목숨 걸지’ 않도록 하는 정치, 비수도권 시민도 고용·교육·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정치에 ‘과잉’이란 없다.

‘대한민국헌법’은 전문에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123조 2항에선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다. 윤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헌법상 책무를 잊지 않기 바란다.

김민아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