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이버 보안 ‘트렌드 세터(trend setter)’가 되자
작년 3월에 구글 클라우드가 세계적인 보안기업인 맨디언트(Mandiant)를 54억 달러(약 7조 원)에 인수했다는 소식에 모두가 놀라던 것도 잠시, 얼마 전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Cisco)가 데이터 및 보안 플랫폼 기업인 스플렁크(Splunk)를 280억 달러(약 37조 원)에 인수하면서 세계 보안 시장은 크게 술렁였다. 주요 시장 분석기관들은 글로벌 정보보안 기업의 대형 인수합병 사례가 2024년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경제는 크게 침체되었지만, 원격근무의 활성화와 지정학적 불안정은 사이버보안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고성장 시장으로 자리 잡은 글로벌 보안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기 위해 선도 기업들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해외 대형 보안업체의 인수합병이나 파트너십 소식에 놀라움을 넘어 위기감까지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글로벌 사모펀드나 중동 국부 펀드 등에서 국내 정보보호 기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실제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약 1600여 개에 달하는 국내 정보보호 기업 중에서는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대표기업. 소위 유니콘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수출보다는 내수시장에, 민간보다는 규제가 강한 공공시장에 집중하고 있고, 이런 산업 구조에서 대형 보안기업이 출현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점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5일 ‘정보보호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전략’을 발표했다. 글로벌 정보보호산업 강국 도약 비전 실현을 위해 2027년까지 정보보호산업 시장 규모 30조원 달성, 보안 유니콘 육성 등을 목표로 4대 전략과 13개 과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발표 내용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리 기업의 글로벌 시장진출 가속화를 위해 시설 확충, 펀드 조성, 인재 양성 등 환경 조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보안 스타트업 육성, 지역 보안산업 강화, 글로벌 시큐리티 클러스터로 구성된 ‘K-시큐리티 클러스터 벨트’를 조성해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가속화를 위한 전진기지로 육성하는 계획과, 기업의 안정적 기술개발과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 민관합동으로 ‘사이버보안 펀드’를 조성하고 2027년까지 1,300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조성하겠다는 계획 등 그동안 정보보호 산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된 요구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관련 업계는 정부의 이번 계획을 크게 환영하고 있으며, 제시된 과제들이 힘있게 추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이번 전략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사이버보안 분야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 또는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수많은 사이버 공격을 받아 왔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우리의 침해 대응 정책과 기술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다. 실제로 국가사이버안전센터와 인터넷침해대응센터에는 세계 각국의 보안 전문가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관심을 정보보호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관련 기관들이 인접한 송파지역에 ‘K-시큐리티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사이버보안과 관련된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보여주고,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제로트러스트(Zero-Trust)나 SW 공급망보안 등 보안 패러다임 전환을 서둘러 준비하는 한편, 로봇, 자율주행차, 항공·우주 등 미래 新산업 관련 융합보안 시장 선점 정책을 조기에 실행한다면, 우리가 세계 사이버보안 분야의 선도국으로 발돋움하는 것도 먼 미래의 일이 아닐 것이다.
둘째는, 국내 정보보호 기업평가에 청신호가 되어 우수한 인재들을 정보보호 기업으로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화이트 해커 출신 기업가들이 다수 배출되고 있고 이런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과 활발한 파트너십을 통해 해외사업을 확대하고 있는바, 이는 우리 기업의 전문성과 기술력이 대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사이버보안 펀드’ 조성된다면, 국내 정보보호 기업들이 애타게 원하고 있는 투자 활성화로 이어져 글로벌 기업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탄탄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숨은 보석’ 같은 국내 정보보호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성장하게 되면, 우수한 인재들의 스타트업 참여가 활발하게 이어지게 되고 이는 곧 보안 유니콘 기업의 출현으로 선순환될 수 있다.
세 번째는, 미국·유럽 등 선도국가와의 공동연구 및 중동·동남아 등 신흥시장의 수요 기반 협력연구를 활성화하는 국가 R&D 전략을 통해 우리 정보보호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가속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개발 과제의 완성도가 시장의 요구수준을 맞추지 못해 사장되어 결과적으로 인건비를 보전하는 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과제 기획부터 지역이나 국가 특성을 고려하고 시장 수요를 맞추어 기획하면 사업화와 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크게 높일 수 있다. 특히, 중동과 동남아 등 신흥보안 시장에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협력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이번 전략을 통해 수요 맞춤형 연구과제를 다수 발굴하여 진행한다면 우리 기업의 신흥국 진출과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 이스라엘 등 주요 선도국과의 공동 연구는 우리 기업이 딥테크 기술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여야 할 과제이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사이버 공격은 손쉬운 전쟁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세계 주요국들은 정보보호산업의 수준이 자국의 안보 역량과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 마련과 국제 공조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미동맹을 사이버안보 분야로 확대하여 양국 간 사이버안보 협력 문서를 채택하고 고위급 협의체를 출범시키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일본을 비롯해 중동과 동남아 등 활발한 해외 순방과 정상외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은 우리 정보보호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점검하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추진과제를 준비할 적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안보를 튼튼히 하는 문제로서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과기정통부의 이번 전략은 시의성이 크고, 각 추진 과제가 가지는 의미도 무겁다. 이번에 발표한 정책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실행 주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추진계획을 구체화하는 한편, 힘 있는 이행이 이루어져 우리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골든아워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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