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털터리 잡스·잠옷 입은 저커버그…실리콘 밸리를 키운 건 ‘이것’이었다 [Books]
긴 머리의 히피 청년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는 회사 사무실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거대하고 육중한 기계였다. 히피 청년은 그러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리라고 확신했다. 다만 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선 그에게 당장 ‘1만 달러’가 필요했다.
자금을 요청하는 긴 머리 청년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대꾸했다. “네?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한다고요?” 1만 달러만 투자하면, 또 자기네 회사를 광고해주면 회사 지분의 10%, 아니 20%를 주겠다고 해도 제안받은 이들의 답변은 냉랭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의 20%는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신작 ‘투자의 진화: 벤처투자가 만든 파괴와 혁신의 신세계’가 출간됐다(원제 ‘The Power Law’). 세상을 바꾸는 진짜 힘은 스타트업 창업자가 아니라 저들을 알아보고 선점했던 벤처투자였음을 풍부한 사례로 논증한 책이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두 차례 오를 만큼 탄탄한 취재력을 가진 저자의 집념이 일궈낸, 750쪽짜리 걸작이다.
연구원들은 ‘쇼클리가 물러나지 않으면 회사를 떠나겠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훗날 ‘8인의 반란자(혹은 반역자, 배신자)’로 불리게 될 이들은 반도체 회사 ‘페어차일드’를 차리는데, 페어차일드에 투자했던 아서 록은 초기 투자금의 600배 수익을 냈다.
‘실리콘 밸리’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스타트업 투자수익의 본질은 평균치가 가장 많은 ‘정규분포’로 이뤄지지 않고, 극소수의 성공이 막대한 이익을 낳는 ‘멱법칙’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하나의 펀드에서 나오는 최선의 투자수익이 나머지 펀드 ‘전체’의 수익과 같거나 혹은 능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4년 세쿼이아캐피탈 투자팀은 이제 갓 스무한 살인 한 젊은이를 만나기로 했다. 약속했던 회의 시간은 오전 8시. 하버드대생 2학년이라던 학생 창업자는 약속시간이 지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한참 지나 나타난 풋내기 학생을 본 뒤 투자팀은 내심 경악했다. 청년은 잠옷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방금 샤워를 했는지 머리까지 젖어 있었다.
투자자들은 늦게 일어난 데다 샤워까지 하고 나온 청년 앞에서 번뇌에 빠졌다. 하지만 “그가 뭘 입고 있든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시험”이란 의견이 중론이었다. 청년이 만든 학내 네트워킹용 웹사이트 이름은 ‘더페이스북(Thefacebook)’이었다. 청년 이름은 마크 저커버그. 벤처투자의 본질은 발명가의 외모가 아니라 기업가치를 꿰뚫는 안목임을 책은 이야기한다.
도어는 슈미트를 직접 찾아가 말했다. “이 회사는 네가 다듬고 키워야 할 작은 보석이야.” 하지만 슈미트의 답변은 기대 이하였다. “사람들은 ‘검색’에 아무 관심도 없어.” 사실 슈미트의 답변을 브린과 페이지가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고 책은 기록한다. 사실 두 스탠퍼드생이 원했던 자신들의 ‘구글 CEO’는 에릭 슈미트가 아닌 스티브 잡스였으니 말이다.
“벤처투자를 둘러싼 야망, 질투, 자아에 대한 묘사는 셰익스피어에 가깝다”(NPR), “저자는 우리를 그들의 정제된 세계로 데려가 그들의 자존심과 베팅의 가능성, 그리고 단점을 공히 보여준다”(로이터) 등의 평가가 뒤따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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