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시대 우리말] ⑭풀어드립니다…자율조작 로봇·인간로봇 상호작용

박건희 기자 2023. 11. 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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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로봇이 융합된 첨단로봇 기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기상 재해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이슈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습니다. 우주개발, 양자컴퓨팅, 챗GPT 등 첨단 과학기술도 어느새 피부로 체감할 정도로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과학기술 중심의 패권 경쟁을 선도하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려지는 다양한 전문용어는 국민들이 편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국어문화원연합회와 수년째 과학기술, 의학 용어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는 방안을 찾는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올해는 정부가 의지를 보이고 있는 국가전략기술 관련 용어들을 들여다보고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되는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정부는 미래성장과 기술주권 확보를 위해 범부처 민관합동으로 ‘12대 국가전략기술’ 육성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첨단 과학기술 용어를 어렵게 느낀다는 점(관련기사: "처음 들어봐요"…난해한 전략기술 용어, 육성 걸림돌 우려)이 확인됐다.

사람처럼 뛰어다니는 이족보행 로봇부터 주변 지리를 분석해 지뢰·폭발물 등 위험물을 제거하는 로봇까지, 차세대 로봇 기술은 인공지능(AI)과 융합된 형태로 발전한다. 과거의 간단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뛰어넘어 보다 세밀한 작업까지 상황에 맞춰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진행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로봇산업 경쟁력을 키워 첨단로봇·제조 분야의 세계 3대 강국이 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정부가 육성하고자 하는 세부 중점기술은 고난도 자율조작, 로봇 자율이동, 인간·로봇 상호작용, 로봇 제어·부품·소프트웨어(SW) 등 로봇과 관련된 4개 기술과 제조 분야에 속하는 가상제조 기술이다.

● 고난도 자율조작

자율조작에서의 '자율'은 주어진 상황이 없다는 뜻이다. '조작'은 부품을 맞는 곳에 끼워넣는 것과 같은 '조립' 작업을 뜻한다. 입력된 순서에 따라 단순 작업하는 로봇을 뛰어넘어 인간의 지시없이도 상황에 맞춰 자율적으로 조립 작업을 해내는 로봇을 만들어 내는 게 자율조작 기술이다. 

박찬훈 한국기계연구원 AI로봇연구본부 본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조작 작업 중 가장 힘든 것이 조립이다. 조립은 레고블럭을 끼우는 것처럼 어떤 물체를 적재적소에 끼워넣는 작업인데, 시각정보와 촉각정보를 모두 가진 인간만이 감각을 통해 해낼 수 있다.

예컨대 세탁기 케이스를 뜯어내면 그 안에 엄청난 양의 와이어가 들어있다. 와이어들은 유연체(비정형체)이기 때문에 손에 잡힐 때마다 모양이 바뀐다. 입력된 값으로만 와이어를 재조립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고난이도 자율조작 기술은 로봇과 AI를 융합해 로봇이 물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립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고난이도'여서 현재 기초 단계를 뛰어넘은 수준의 기술은 세계 어디에서도 개발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 로봇 자율이동

자율조작이 물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면 자율이동은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게 자율보행로봇이다. 낯선 상황에서도 AI의 인지·분석·판단 기능을 바탕으로 보행할 공간을 이해하고 경로를 탐색한다. 사람의 개입없이 로봇이 스스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길을 판단할 수 있다.

AI의 판단에 따라 실제 움직일 수 있는 몸체도 개발돼야 한다. 산등성이처럼 경사진 곳이나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한 곳도 문제없이 걸을 수 있고 바위같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돌아가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팔, 다리, 관절 센서 등을 설계한다. 

한 예로 기계연 AI로봇연구본부는 평지에서는 기존 바퀴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굴러가다가 계단 등의 장애물을 만나면 장애물의 모양에 맞춰 탄력적으로 제 모습을 바꾸는 '트랜스포밍 바퀴'를 개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연구팀은 카메라, 라이다 센서 등을 융합해 실시간으로 주변 환경을 인지하고 주행 경로를 세우는 사족보행 로봇을 만들어 지난 6월 자율보행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 인간·로봇 상호작용

이처럼 자율조작과 주행이 가능한 로봇이 탄생한다고 해도 각종 작업 현장에서의 인간과의 공존은 필수다. 작업의 종류가 다양하고 긴 공정에서는 로봇보다 인간 노동자가 훨씬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가령 하나의 공정에서 부품 끼우기, 피복 벗기기, 용접하기, 녹이기 등 작업이 모두 필요하다면 두 손만으로 이 모든 작업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인간이 로봇 자동화 시스템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람과 로봇이 한 팀이 되려면 의사소통이 잘 이뤄져야 한다. 박 본부장은 "로봇이 시각적 문맥과 언어적 문맥을 모두 이해하고 이 맥락 속에서 의사 전달까지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지적 의사소통이 있는가하면 웨어러블로봇처럼 육체적인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의사소통 능력도 필요하다. 예컨대 근력을 증강시켜 움직임에 도움을 주는 웨어러블 로봇의 경우 인간의 뇌파가 보내는 근육 동작을 즉각적으로 읽어 움직임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개발된다. 

● 로봇 제어·부품·소프트웨어(SW)

위 모든 기술의 기반이 되는 것이 로봇 제어·부품·SW 기술이다. 말 그대로 로봇을 이루는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인간과 유사한 로봇(휴머노이드)을 만들려면 인간의 감각을 닮은 센서와 구동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자동차에 사용되는 부품과는 다른, 적합한 부품이 개발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역할을 담당할 로봇용 소프트웨어 기술도 연구 분야 중 하나다. 

● 가상제조

가상제조는 엄밀히 따지자면 생산공장 등 로봇 기술이 아닌 '제조 기술'에 속한다. 가상제조는 일종의 가상공장으로, 가상 세계에서 공장을 지은 뒤 어떤 구성요소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기술을 도입할지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기술이다.

이미 생산라인을 가동 중인 공장의 경우 그 공장과 똑같이 생긴 디지털트윈을 가상세계에 만들어 더 효율적인 운영 체계를 연구할 수 있다. 여기에 확장현실(XR)이라 불리는 초실감형 기술을 접목한다. 특정 안경을 쓰고 기계를 바라보면 안경 위에 기계의 작동 현황, 목표치 달성 여부, 고장이 날 확률 등이 표시되는 식이다. 

공장의 노동 인력을 교육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비숙련 노동자가 XR용 안경을 쓰면 안경에 기기 조작을 위한 지시사항이 표시돼 이를 따라가기만 해도 금세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찬훈 한국기계연구원 AI로봇연구본부 본부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인정받은 첨단 로봇 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며 "AI와 로봇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갖출 수 있는 융합형 교육이 마련된다면 향후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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