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고속버스 민폐인' 신상 털기는 정의 구현? 디지털 시대 사적 제재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심영구 기자 2023. 11. 3. 10: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복면제보] (글 : 윤단비 작가)


<복면제보>, 이번에는 사회적 고민을 제보합니다.


혹시 '고속버스 민폐인' 사건 아시나요?
 

신상 털기의 타깃이 된 일명 '고속버스 민폐인'

한 여성이 뒷좌석까지 과하게 의자를 젖혀놓고 있었습니다. 불편함을 느낀 뒷좌석 승객은 다리를 복도에 내놓아야만 했고 버스 기사는 여성에게 의자를 세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성은 젖힐 수 있게 만든 의자를 젖힌 게 무엇이 문제냐며 기사의 요구를 거절했고 다른 승객들과도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3분가량의 영상이 공개되자, 그녀의 신상을 털어 달라는 댓글이 빗발쳤습니다.


대체 그녀는 누구길래 이렇게 무례할까 싶었습니다. 댓글을 보니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녀의 신상을 털어서 크게 망신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넷 검색도 해봤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신상 털기를 통해서라도 이런 사람들을 혼내주는 게 바로 정의 실현 아닐까요?

이 궁금증을 사회학자 겸 작가로 활동 중인 오찬호 작가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광민 선생님과 함께 고민해 봤습니다.
 

신상 털기는 본능적 관음증일까? 사회적 동조현상일까?

※ 신상 털기 : 개인의 신상 정보를 온라인에 퍼뜨리는 일
이광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상 털기엔 관음증이라는 본능이 작용하는 겁니다. 더 본능적으로는 남이 가지고 있는 치부나 흠결 혹은 비밀스러운 걸 알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부정확한 정보라 하더라도 누가 어쨌대 저쨌대에 대한 걸 자꾸 내가 찾아서 보려고 하는 욕망은 관음증적인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을 해요.

본능은 본능을 충족시키고 싶은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타인의 흠결을 보면서, 혹은 타인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는 식으로 우월감을 가질 수도 있고요. 혹은 '나는 저렇게 불쌍한 상황은 아니야, 저렇게 힘든 상황이 아니야'라는 식으로 안도감을 가질 수도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우리 누구나가 다 공격성을 일정 부분 가지고 있거든요. 그 누군가 것을 파헤치면서 공격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찬호|사회학자, 작가
관음증이 좋게 발현된다면 정치인이나, 사회를 감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불특정 한 평범한 대중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커요. 관음증이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느낌이에요.
 
이광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상 털기에서 보이는 대중들의 감정은 호기심이에요. 그리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목적에는 분노도 담겨있어요. 우리 심리적으로 궁금하고 화가 나면 찾고 싶은 게 본능이거든요. 순수하게 알고 싶다 정도에서 끝나면 다 알 수 없으니까요. 근데 알려고 하면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잖아요. 노력해서라도 이 사람이 누군지를 알고 싶은 이유는 내가 일단 이 사람한테 화가 나 있고 이 사람이 하는 행동이 나한테 분노를 유발하니까 그 분노 에너지가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신상을 알아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되는 거죠.
 
오찬호|사회학자, 작가
그런데 말이죠.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인간의 본성도 아닌데 '누군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라는 게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장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더 많이 남의 신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위기에 노출됐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본성처럼 누구나 다 남의 신상이 궁금한 건 아니거든요.

이광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호기심이 모든 영역에서 발동되진 않아요. 나에 대한 자극이 있어야 하고요. 호기심을 충족시킬 방법이 있어야 돼요. 나한테 아무리 자극이 있더라도, 충족시킬 방법이 없으면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요. 지금 우리 사회가 다양한 미디어의 확대, SNS, 인터넷 등을 통해서 검색을 좀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신상을 털 수 있는 수단을 일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신상 털기 영역이 사람의 호기심으로 작동을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좀 들어요.

오찬호|사회학자, 작가
신상 털기가 쉬워지고 익숙해지다 보니까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상을 털지 못하면 더욱 궁금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거죠. 디지털을 이용해 남의 신상을 알아내면 성취욕도 느끼고, 그리고 신상 털기가 대중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우쭐하게 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나 싶어요. 그러는 사이 자기들끼리 즐기는 하나의 영역이 된 거죠.
 

디지털 시대, 사적제재의 방법으로 쉽게 사용되는 신상 털기

오찬호|사회학자, 작가
무엇보다 문제는 디지털 시대엔 신상 털기가 '정의 구현'의 방법으로 여겨진다는 겁니다. 올바른 사적제재, 뭔가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이런 식의 어떤 해석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직접 행동으로 하는 게 아니라 키보드를 갖고 하지만 마치 내가 학교 폭력 가해자를 혼내주는 〈더글로리〉의 문동은이 된 것처럼 말이죠. 사실 사적제재는 역사 속에서도 계속 존재해 왔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