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재료, 같은 재질, 같은 날 만든 위스키…통마다 맛이 다른 까닭은?[주식(酒食)탐구생활㉝]

박경은 기자 2023. 11. 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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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 위스키 ‘1792 풀프루프’ 싱글배럴 조선호텔 에디션 3종 시음해보니

‘디깅(digging)소비’는 2030세대의 소비 트렌드 중 하나다. 디깅은 선호하는 특정 품목에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을 의미한다.

위스키와 같은 프리미엄 주류는 대표적인 디깅 품목이다. 예전만 해도 위스키 소비 패턴은 17년, 21년 등 위스키 연산으로 가치를 매기는 식이었다. 하지만 디깅 소비가 확산되고 마니아층이 늘어나면서 위스키는 싱글 몰트 위스키, 독립 병입 위스키 등 세분화된 취향과 특징을 추구하는 식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나만의 취향, 특별한 경험을 찾으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위스키 시음회에 대한 인기도 높다. 웨스틴 조선 서울이 매달 열고 있는 위스키 클래스는 디너코스를 포함해 참가비가 20만~30만 원대에 이르는데도 매번 20여 명의 정원이 순식간에 마감된다.

지난 10월 말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열린 위스키 클래스를 찾았다. 이날 시음 대상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 62.5도의 버번 위스키 ‘1792 풀 프루프’ 싱글배럴 조선호텔 에디션 3종이었다. 버번 위스키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로, 옥수수가 원료의 51% 이상을 차지한다.

우선 ‘1792 풀 프루프’에 대해 살펴보자. 이 제품은 버번 위스키의 수도로 불리는 미국 켄터키주 바즈타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바톤 1792 증류소’에서 생산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맛과 향이 강한 이 위스키는 2020년 세계적인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가 올해의 위스키로 꼽으면서 브랜드 인기가 수직 상승했다. 국내에서는 최근 3년간 매출이 1000% 늘어났을 정도다.

개성과 취향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위스키 시음회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1792 풀 프루프’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조선호텔은 올 초 재미있는 기획을 했다. 1792 제품을 숙성하는 수많은 오크배럴(오크통·200ℓ)에서 한 개의 배럴을 직접 골라 ‘싱글배럴 조선호텔 에디션’을 만들기로 했다. 싱글배럴이란 여러 개의 오크통에 담겨 있는 원액을 섞는 것이 아니라 오크통 하나에 담겨 있는 원액만을 가지고 만드는 위스키를 의미한다. 바톤 1792 증류소의 마스터 디스틸러(양조 최고 책임자) 대니 칸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증류소 내의 40개 숙성 창고 중 최상급 품질을 자랑하는 원액이 모여 있는 ‘웨어하우스 A’에서 9개의 오크배럴을 선별했다. 이 배럴에 든 샘플을 맛보고 조선호텔 특별 에디션을 선정하는 것은 조선호텔 바텐더들의 몫이었다. 이 작업에는 웨스틴 조선 서울, 웨스틴 조선 부산, 그랜드 조선 제주의 바텐더 3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올 2월 각기 저마다의 호텔을 대표할 배럴 1개씩, 모두 3개의 배럴을 선정했다.

3개의 배럴에 담긴 원액은 2015년 10월27일 증류해 통입된 것이다. 7년 10개월의 숙성과정을 거쳤고 병입한 날짜도 지난 8월 8일로 같다. 차이가 있다면 증류소 숙성 창고에서 배럴이 놓여 있던 위치다. 웨스틴 조선 서울이 선택한 배럴은 3층 8번 선반, 부산과 제주는 각기 3층 9번 선반에 있던 것들이다. 특히 부산과 제주 배럴은 바로 옆에 나란히 놓여 있던 것이다. 위스키의 원료와 오크통의 재질, 숙성 시간과 장소가 모두 같은데, 배럴이 놓여 있는 위치만 조금씩 다를 뿐인데 과연 맛의 차이가 있을까. 어떤 차이가 얼마나 얼마나 느껴질까. 미심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바톤 1792 증류소의 저장고에 놓여 있는 버번 위스키 오크배럴(왼쪽 사진). 1792 풀프루프 싱글배럴 조선호텔 에디션

먼저 ‘1792 풀 프루프 웨스틴 조선 서울’. 향을 맡아보니 강한 캐러멜 향이 훅 느껴졌다. 첫 모금을 머금자 끈적하고 알싸한 맛이 혀에 감겼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부드러운 바닐라맛으로 마무리되나 싶더니 쌉쌀한 맛의 여운이 남았다.

두 번째로 맛본 것은 ‘1792 풀 프루프 웨스틴 조선 부산’. 잔에 코를 가까이 대자 마른 풀향기가 났다. 완전히 다른 위스키 같았다. 잔을 입에 대니 서울 에디션에서 느껴졌던 강한 단맛 대신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이 감돌았다. 전체적으로 가볍고 온화한 맛인 데다 목 넘김도 부드러운 편이었다.

마지막 잔은 ‘1792 풀 프루프 그랜드 조선’(제주)이었다. 에탄올 향이 코를 살짝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첫입에서 짭짤한 맛과 알싸한 맛이 동시에 나더니 톡 쏘는 듯한 여운이 이어졌다. 거칠고 터프한 맛이었다.

마치 세 종류의 다른 위스키를 맛본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가능할까. 문민수 1792 브랜드 앰배서더는 “그래서 위스키는 사람이 아닌 자연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재질의 오크배럴에 담겨 있지만 저마다 놓여 있던 위치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온도, 바람, 공기의 흐름 등 위스키를 숙성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미세한 차이에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지요. 와인은 농작물의 작황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버번 위스키는 기후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버번 위스키 생산에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는 켄터키주는 덥고 건조하다. 이 때문에 숙성되는 동안 오크배럴 안에 있는 원액이 많이 증발한다. 배럴이 놓여 있던 위치에 따라 증발한 양도 차이가 있다. 3층 9번 선반에 나란히 놓여 있던 부산, 제주 에디션의 원액은 서울 에디션 원액에 비해 증발된 양이 훨씬 많았다. 이 때문에 200ℓ짜리 용량의 오크배럴에서 서울 에디션은 180병이 생산된 반면, 부산과 제주 에디션은 각각 150병이 생산됐다. 여러 오크배럴의 원액을 섞으면 균질한 맛의 위스키를 대량생산할 수 있지만 싱글배럴 위스키는 희소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문민수 앰배서더는 “위스키가 가진 맛의 품질과 독창성에 천착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면서 “곡물 수확 시기는 물론이고 증류·통입한 계절, 지난해 켄터키 지역의 기온과 습도까지 따져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열린 버번 위스키 클래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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