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 그 시간을 어찌 견뎌낼 텐가[과학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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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으로 일할 때 사람들이 "자연사박물관은 뭐 하는 곳입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자연사(自然史)박물관은 사고사(事故死) 또는 병사(病死)하지 않고 자연사(自然死)한 생명을 전시하는 곳입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자연사란 무엇일까? 자다가 슬며시 숨을 거두는 것일까? 그건 돌연사다.
그것도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만약에 우리 인간들이 자연사를 한다면, 40세면 그 수명이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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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으로 일할 때 사람들이 “자연사박물관은 뭐 하는 곳입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자연사(自然史)박물관은 사고사(事故死) 또는 병사(病死)하지 않고 자연사(自然死)한 생명을 전시하는 곳입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보통은 웃어넘기지만 가끔 진지한 사람들은 “저도 자연사하고 싶어요”라고 말을 덧붙인다.
우리는 자연이라고 하면 마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생각보다 참혹하다. 자연사란 무엇일까? 자다가 슬며시 숨을 거두는 것일까? 그건 돌연사다. 자연사는 굶어 죽든지 잡아먹혀 죽는 거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호랑이와 사자도 평소에는 자기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놈들에게 잡아먹혀 죽는다. 그래서 야생동물보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훨씬 오래 산다.
자연에는 늙는다는 게 없다. 야생동물들은 백내장, 관절염, 당뇨병, 심장병, 뇌중풍이나 암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 늙기 전에 잡아먹혀 죽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은 오직 인간만의 특권이다. 그만큼 인간의 노화와 죽음은 특별하다. 이 특별함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인간 진화를 다룬 교양과학서 ‘루시의 발자국’을 함께 쓴 스페인 현대 문학의 거장 후안 호세 미야스와 고생물학자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가 이번에는 노화와 죽음의 비밀을 추적한 책 ‘루시의 마지막 발자국’을 내놓았다. 한국어판 제목은 ‘사피엔스의 죽음’이다. 두 사람은 문명의 출발과 함께 노화와 죽음에 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와 공포에서 벗어나 노화와 죽음의 의미를 알려준다.
중년의 고생물학자는 노년의 소설가를 노화와 죽음의 현장 이곳저곳으로 안내한다. 자신의 생각을 과학에 비춰 반성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소설가는 마치 탐구 여행서처럼 써나간다. 분명히 깊은 과학적 내용이 담긴 교양과학서인데 마치 한 편의 멋진 여행소설을 읽는 것 같다. 괜히 문학의 거장이 아니다.
인간이라고 처음부터 수명이 길지는 않았다. 유전자가 자연선택되는 과정에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 젊을 때 장애와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자연에서 선택되지 않는다. 짝짓기 이전에 죽어서 유전자를 후대에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늙어서는 온갖 병에 시달릴까? 늙어서 우리를 괴롭힐 유전자는 자연선택에서 도태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젊을 때는 활기차게 살아가고 늙으면 아프고 힘들다. 노화란 자연선택이 걸러내지 못한 잉여의 시간이다. 자연의 실수로 생긴 선물이다. 그것도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만약에 우리 인간들이 자연사를 한다면, 40세면 그 수명이 다할 것이다.
늙은이의 인생은 경제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고맙게 여기면서 살 일이다. 차마 자연사는 하지 못할지언정 노화와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늙고 죽는 일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닌 40대 이상의 모든 벗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정모 과학저술가(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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