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영화 한편이 세상은 못바꿔도 영향은 줄 수 있다고 믿어"[인터뷰]

모신정 기자 2023. 11. 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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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들’서 형사 황준철 반장 역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올해 선보이고 있는 작품만 네 편째다. 배우 설경구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소년들'로 찾아왔다. 올초 선보인 영화 '유령'(이해영 감독)을 필두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변성현 감독), 여름 개봉작 '더 문'(김용화 감독)에 이어 한국의 켄 로치로 불리는 정지영 감독과 손잡고 만든 '소년들'로 서늘해진 가을을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영화 '소년들'은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건 실화극이다.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한 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발생했던 일명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극화한 '소년들'에서 설경구는 극중 우리슈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완주서 수사반장 황준철 역을 맡았다.

지난달 26일 '소년들' 인터뷰를 위해 스포츠한국과 만난 설경구는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부터 실화 소재 영화들에 꾸준히 출연하는 이유 등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책을 받기 전 정지영 감독님을 사석에서 뵌 적이 있어요. 정 감독님이 '강철중 같은 역할로 같이 한번 해야지' 하시더군요. 딱 일주일 후에 '고발'이라는 제목의 책을 주셨어요.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회의를 하며 바뀌어 가는 과정이 재미있더라고요. '소년들'이라는 제목으로 바뀌고 시간순서가 아닌 교차 편집으로 바뀌며 지금의 모습을 찾아갔죠. 정지영 감독이 살아오신 과정을 다는 모르지만 사회적 발언도 서슴없이 하시고 남들이 조심스럽게 주저하는 사회적 메시지도 던지시는 분이잖아요. 직접 단식에 나설 정도로 몸도 던지는 분인데 정말 강렬함과 정열적인 측면이 있으셨어요. 감독님의 눈을 도저히 회피할 수 없더라고요."(웃음)

극중 황준철은 전라북도에서 손꼽히는 검거율을 자랑하는 베테랑 형사에 한번 문 것은 절대 놓지 않아 '미친개'라는 별명을 지닌 인물이다. 완주경찰서 수사반장으로 부임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던 중 황준철은 이미 범인이 잡힌 우리슈퍼 강도치사사건의 진범을 제보하겠다는 제보 전화를 받는다. 사건을 다시 파헤치던 그는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재수사에 나선다. 설경구는 2000년의 과거와 2016년의 현재가 극심하게 교차되는 극의 흐름을 위해 혹독한 체중 감량을 통해 세월의 간극을 표현했다. 진범을 잡기 위한 형사의 열의와 현실의 벽 앞에 무기력해진 좌절감이라는 정반대의 감정을 오가며 관객들에게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을 해냈다.

"저 또한 정지영 감독님과 꼭 같이 한번 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였죠. '공공의 적'을 하고 나서강철중 같은 역할들이 저한테 많이 왔었죠. 그때는 많이 밀어냈었는데 마침 정 감독님의 제안은 받아들이게 됐어요. 황 반장은 마치 정리된 강철중 같았다고 할까요. 일을 체계적으로 하는 경찰이었고 사건이 있고 16~17년 이후 황준철의 모습이 중요하게 와닿았어요. 피폐해져 보이고 몸과 마음도 지쳐있고 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젊은 모습과 교차 시켰죠. 혈기 왕성한 모습과 갭이 있기를 바랐어요. 황반장은 이 영화의 실화가 아닌 '약촌오거리' 사건에서 실제 모델이 있었어요. 뇌경색이 올 정도로 힘겹게 수사를 진행했고 파출소로 좌천되는 경험까지 겪은 황 반장님에게서 모티브를 가져왔죠."

설경구는 수많은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실미도'(2003), '그놈 목소리'(2007), '소원'(2013), '생일'(2019)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여러 편 보유하고 있다. 특히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작품들을 주저 없이 선택해왔다. 좀 더 흥행성이 보장된 영화, 수상 가능성이 높은 영화들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선택은 늘 남달랐다.

"약자의 편을 든다는 말씀도 하던데 그렇지 않아요. 저 살기도 바쁜데 무슨 약자 편을 들겠어요. 다만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에는 사회적 메시지가 있다 보니 제안하신 감독님들을 만나보면 '이 이야기를 꼭 해야 한다'는 강렬함이 있었어요. 이미 해당 사건에서 분노하시고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고 저를 만나러 오세요. 그런 작품을 안 한다고 말하면 제가 어쩐지 회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요.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최소한의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 감독님이 이 이야기가 이런 사건들에 대한 거울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소년들'을 보고 나면 약촌오거리 사건이나 억울한 누명을 쓴 다른 이야기들도 찾아보시게 될 것 같아요."

1993년 연극 '심바새매'로 데뷔해 어느덧 30년차 배우가 된 그에게는 실화 소재 작품들 외에도 다양한 대표작들이 있다. 특히 그에게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안기며 20~30대 마니아 팬층을 만들어낸 영화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2017)이나 남우주연상 5관왕을 안긴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2021)는 초기 대표작인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2002)에서의 폭발적 에너지와 비견되는 경지를 넘어선 완숙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5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젊은 세대들에 못지않은 에너지를 펼칠 수 있는 그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예전에 정지영 감독님이 '박하사탕' 현장에 오셨다가 저를 보신 적이 있는데 나중에 어떤 다큐에 나오셔서 '그때 설경구는 싸가지 없는 놈이었다'고 하신 일화가 있어요. 당시에는 정말 제 역할 외에는 어떤 여유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인물로 살아낼 생각만 했던 거죠. 이번 현장에서 감독님께 '정말 죄송하다, 지금은 주변을 잘 살피려고 한다'고 말씀드렸죠. 세월이 지나니 현장이 더 잘 보이고 현장에 있는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 위기론까지 말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영화는 계속 상영돼야 한다고 봅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꼭 좋은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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