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킨스의 인생 서재에서 함께 읽는 ‘진화론 복음서’[북리뷰]

2023. 11. 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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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
리처드 도킨스 지음│김명주 옮김│김영사
‘이기적 유전자’ 쓴 도킨스의
과학 인생을 풍요롭게 한 책
찰스 다윈 ‘종의 기원’서부터
칼 세이건 ‘악령… 세상’까지
6개 주제 60가지 통찰 풀어내
“과학자처럼 읽고 생각하게 해
도킨스의 知的 글쓰기에 경의”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신간에서 도킨스는 그의 과학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작은 사진들은 그가 언급한 책들. 맨 위부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프레드 호일의 ‘검은 구름’, 대니얼 갤루이의 ‘암흑 우주’. 김영사 제공

리처드 도킨스가 최초로 책의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 50년 전이다. 1976년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상식을 뒤엎는 논쟁적 주제, 단단한 사실에 바탕을 둔 설득력 있는 글쓰기, 독자들 마음을 파고드는 매혹적인 문체로 단숨에 인간과 생명, 문화와 사회에 대한 우리 생각을 영원히 바꾸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가 만들어 낸 생존 기계이다.”

도킨스에게는 어렵고 복잡한 과학 개념을 명확하고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수많은 기사와 에세이, 강연과 대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통해 그는 대중들에게 과학의 세계를 안내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눈먼 시계공’(1986), ‘만들어진 신’(2006) 등의 저서에서 그는 엄밀한 과학적 증거에 바탕을 두고 창조론과 지적 설계의 기만과 오류를 논파하고, 생명 탄생과 진화에 대한 명확하고 이성적인 이해를 북돋우는 데 앞장섰다. 그가 대중의 과학화에 앞장서 온,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과학 저술가에 속한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은 도킨스의 정수를 담은 책이다. 머리말, 후기, 서문, 서평, 에세이, 대담으로 이루어진 60편의 글들은 도킨스의 과학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었던 책과의 만남, 책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보여준다. 덕분에 우리는 ‘종의 기원’(찰스 다윈),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칼 세이건) 같은 과학서에서 ‘검은 구름’(프레드 호일), ‘암흑 우주’(대니얼 갤루이) 같은 과학소설에 이르기까지 지난 50년간 사람들을 매혹했던 온갖 책들을 도킨스와 함께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과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 대해 무엇이 사실인지 이해하는 체계적 방법”으로, 과학에는 “무지를 줄이고 두려움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 과학 글쓰기, 인간의 탐구, 회의주의 옹호, 신앙의 심문 등 6가지 주제로 나뉘어 실린 글들에서 도킨스는 과학의 진실과 사고방식을 널리 알리고, 과학에 어긋나는 온갖 담론을 정면으로 논박한다. 각 부 앞에 실린 대담에서 닐 디그래스 타이슨, 스티븐 핑커, 크리스토퍼 히친스, 매트 리들리 등은 흥미로운 대화를 통해서 해당 주제의 핵심을 요약하고, 밝혀진 사실 너머로 탐구의 지평선을 넓혀준다.

도킨스의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이 책에 실린 글 전반에서 드러나는 신랄하고 도발적 문체이다. 그는 분노를 쏟아내는 듯한 전투적 어조로 과학의 숱한 이단들을 격렬하게 비판하고, 냉혹하고 냉정한 문장으로 동료 과학자들과 서슴없이 논쟁을 벌인다. 생동감 넘치고 유려한 데다 풍자와 재치로 가득한 이 글들의 목적은 신앙의 환상을 벗겨내고 진실을 마주하며 진화론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다. 도킨스는 말한다. “다윈의 자연선택에 바탕을 둔 진화론은 우리의 존재, 그리고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모든 생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그러나 도킨스의 글은 단순한 과학 글쓰기를 넘어선다. ‘과학자 시인’으로서 그는 과학 언어에 시적 감수성을 불어넣을 줄 알았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과학도 시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짜릿한 전율을 줄 수 있다.” 수많은 글에서 무지한 사고를 무찌르고 과학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그의 눈부신 이야기 솜씨는 문학만큼이나 자주 사람들 영혼을 사로잡았다.

명료하고 정직한 도킨스의 글은 자연의 심오함을 탐구하는 “과학의 설렘”을 알리는 산문이자 “실재(reality)를 노래하는 시”였다. 과학의 건조한 아이디어와 논리적인 사고를 꾸밈없이 전하면서도 그는 우리가 생명의 신비에 대한 경이를 잃지 않도록 이끌어 간다. 이 책 첫머리에 놓인 에세이 ‘과학으로서의 문학’에서 우리는 존재의 깊이를 탐구하는 문학에 대한 그의 강박적 질투와 함께 그가 평생 감탄하고 추구했던 과학 글쓰기의 방법과 실체를 다채롭게 마주칠 수 있다.

좋은 책은 언제나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촉발하고, 인간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며, 혼란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모든 사람이 과학자처럼 읽고 생각하도록 안내하는 데 평생을 바쳐온 도킨스의 지적 글쓰기에 경의를 표한다. 640쪽, 2만88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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