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신하고 중절하게 도와주면 1억엔”[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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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놀랍다.
이 소설의 설정도, 작가도, 그리고 이 '문제작'을 일본 순수문학계 최고 권위의 신인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단의 결정도.
올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자 일본에서 출간된 직후 판매 부수 30만 부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은 '헌치백'은 신음 소리 가득한 성인 소설의 한 부분으로 시작한다.
샤카가 임신과 중절을 시도하는 것은 그녀가 몰상식하거나 반사회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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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가와 사오 지음│양윤옥 옮김│허블
여러모로 놀랍다. 이 소설의 설정도, 작가도, 그리고 이 ‘문제작’을 일본 순수문학계 최고 권위의 신인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단의 결정도.
올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자 일본에서 출간된 직후 판매 부수 30만 부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은 ‘헌치백’은 신음 소리 가득한 성인 소설의 한 부분으로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 이자와 샤카는 성인 소설을 쓴다. 그리고 중증 척추 장애인이다. 그녀는 휘어지고 뒤틀린 등뼈 때문에 인공호흡기와 담을 빼내는 흡인기 없이는 살 수 없다.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선 식사와 목욕도 불가능하다. 부모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그는 태블릿으로 성인 소설을 써서 번 돈을 불우 이웃에게 기부한다.
샤카는 트위터에도 자주 글을 올린다. “맥도날드 알바, 해보고 싶다.” “고교 생활, 해보고 싶었다.” 위악적인 상상력도 숨김없이 표출한다.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임신하고 싶습니까? 아, 그게 아니라 중절이랬나?”라고 경멸의 눈빛을 하며 묻는 남성 간병인에게 제안한다. “내가 임신하고 중절하는 걸 도와주면 1억 엔을 줄게요.”
샤카가 임신과 중절을 시도하는 것은 그녀가 몰상식하거나 반사회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헌치백(hunchback·곱사등이) 괴물’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내 휘어진 몸속에서 태아는 제대로 크지도 못할 텐데. 출산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임신과 중절까지라면 보통 사람처럼 기능할 것이다.” “아기가 생기고, 지우고, 헤어지고…. 그 친구들의 등 뒤를 따라가고 싶었다. 낳는 건 못 하더라도 지우는 것이나마 따라가고 싶었다.”
책은 ‘중증 장애인 여성의 치열한 생존기’가 아니다. 그보다 뻔하지 않고 도발적이며 발칙하다. 그리고 그동안 장애인을 일반적 인간, 성적인 존재 외의 것으로 제쳐 둔 우리의 생각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헤집는다. 남성 간병인에게 샤워를 맡긴 채 샤카는 생각한다. “장애인은 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회가 만든 그 정의에 나는 동의했다. 우선 내게 편리한 대로 거짓으로 동의했다. 다행히 거짓을 들키지 않을 만큼은 마스크가 얼굴을 감춰주는 시절”이라고.
샤카는 작가 이치가와 사오가 투영된 인물이다. 사오 역시 자유로운 움직임이 힘들 정도의 중증 척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와세다(早稻田)대를 나온 그는 장애인 표상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가능성을 논한 졸업논문으로부터 소설이 시작됐다고 이야기한다. 장애 당사자 작가나 중증 장애인이 주인공인 순수문학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헌치백’으로 이어졌다고.
사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작은 목소리, 삐딱한 주인공에 부디 큭큭큭 웃어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의 바람대로 큭큭거리며 소설을 읽겠지만, 마음 편히 웃어넘길 순 없을 것이다.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단의 평대로 이 책이 우리에게 들이미는 질문의 기백은 독자에게 안이한 대답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140쪽, 1만20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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