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결핍됐던 삶 속으로 떠나다[북리뷰]

박세희 기자 2023. 11. 3. 09: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원한 이방인'(1995)으로 펜헤밍웨이상 등 주요 문학상 6개를 휩쓴 한국계 미국 작가 이창래의 신작 '타국에서의 일 년'은 그간 이 작가의 작품들을 봐온 독자라면 다소 낯설게 느낄 수 있다.

20대 초반의 남성 주인공이 타국으로 떠나 겪는 일들을 다루는데, 한국계 미국인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한 '영원한 이방인'과 위안부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척하는 삶'(1999) 등과는 확연히 다른 결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강동혁 옮김│RHK

‘영원한 이방인’(1995)으로 펜헤밍웨이상 등 주요 문학상 6개를 휩쓴 한국계 미국 작가 이창래의 신작 ‘타국에서의 일 년’은 그간 이 작가의 작품들을 봐온 독자라면 다소 낯설게 느낄 수 있다. 20대 초반의 남성 주인공이 타국으로 떠나 겪는 일들을 다루는데, 한국계 미국인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한 ‘영원한 이방인’과 위안부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척하는 삶’(1999) 등과는 확연히 다른 결이다. 젊은이를 화자로 그가 겪는 드라마틱한 일들을 속도감 있게 펼쳐낸다는 면에서 이창래표 넷플릭스 시리즈물 같기도 하다.

주인공인 ‘틸러 바드먼’은 30대 애인 밸과 그녀의 8살 난 아들 빅터 주니어와 함께 다소 지저분한 동네에 산다.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을 떠올리게 하는(이 작가는 프린스턴대를 거쳐 현재는 스탠퍼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부유한 대학가에서 외동으로 자란 틸러는 아버지에겐 연수를 간다고 말한 뒤 1년간 해외를 다니며 어떤 ‘모험’을 했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홍콩국제공항에서 만난 밸을 따라 이곳에 자리 잡았다. 소설은 틸러가 모험을 떠나기 전인 1년 전을 회고하며 진행된다.

틸러의 인생이 바뀐 것은 성공한 중국계 미국인 퐁을 만나면서다. 거대한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화학자인 동시에 요거트 가게와 핫도그 가게 등 다수의 요식업체들을 운영하고 있는 퐁과 골프장 캐디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까워진 틸러는 그의 제안으로 함께 아시아로 떠난다. 그의 계획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약초인 ‘자무’를 차세대 콤부차로 확장하는 것. 틸러는 퐁과 함께 중국, 마카오 등을 누빈다. 이들은 여정에서 다소 기이하고 놀라운 인물들과 만나고,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영화적인 절정으로 치닫는다. 넷플릭스 시리즈물의 분위기를 내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이야기는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나, 작가가 집중해 바라본 것은 틸러의 결핍과 그와 퐁과의 관계인 듯하다. 증조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라 8분의 1의 한국인 피를 지녔다고 말하는 그가 느끼는 결핍은 가족으로부터 나온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 가족을 버린 채 사라졌고 싱글대디로 자신을 돌봐 온 아버지와 틸러의 관계는 적절한 ‘선’을 지킬 뿐이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관계. 연수를 다녀오겠다는 문자메시지에 아버지는 하트 이모티콘으로만 답하는 식이다. 이런 가운데 성공한 어른으로서 자신을 이끄는 퐁을 틸러는 아버지처럼 느꼈을 것이다. 퐁의 최후가 어떻든, 퐁과 틸러의 관계가 어떤 결말을 맺었든 틸러는 그에게서 큰 무언가를 얻는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자 자신의 20대를 생각하게 될 듯하다.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무언가가 결핍된, 어리숙하고 때때로 어리석은 틸러의 모습은 모두의 20대 초반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몇몇 설정들은 개연성이 부족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신작은 이 작가가 쓴 최고의 작품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새롭게 시도한 스타일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700쪽, 2만20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