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던 비전임 연구자의 연구가 인류의 희망이 되다
노정혜|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 지나갔다. 일부 비판이 있지만, 노벨상은 여전히 인류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횃불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여성 수상자가 늘어나는 것은 여성의 업적에 대한 숨겨진 편견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신호이다. 올해는 6개 분야 중 4개 분야(물리학, 생리의학, 평화, 경제학)에서 여성 수상자가 배출되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끈 사람은 생리의학상을 받은 헝가리 세게드대학 커털린 커리코 교수이다. 그는 엠알엔에이(mRNA)를 변형시켜 효과적인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될 수 있도록 한 공로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드루 와이스먼 교수와 함께 수상하였다. 우리에게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으로 친숙하게 알려진 엠알엔에이 백신은 코로나로 인한 인류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에서 시작된 이들의 협동 연구는 그 파급력뿐 아니라, 대학에서 쫓겨날 뻔한 비전임 연구원이 노벨상 수상자가 된 성공 서사로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먼저 엠알엔에이 백신을 가능케 한 지식과 기술은 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가. 현대의 바이오 신약들은 대부분 항체나 효소 등의 기능을 가진 단백질로 되어 있다. 이 단백질을 가장 빠르게 생산하는 방법은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가진 일명 ‘메신저’(m) 알엔에이, 즉 엠알엔에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중 나선 디엔에이(DNA)에 A, G, C, T 네가지 염기 알파벳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그 정보가 단백질 형태로 발현되려면, 단백질 하나하나의 정보를 엠알엔에이 분자에 옮겨 적은 뒤, 그 정보를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다.
디엔에이 정보가 있으면, 엠알엔에이를 실험실에서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엠알엔에이를 체내에 주입하면, 병을 치료하는 효소이건, 면역력을 유도할 항원이건, 아니면 암을 파괴할 항체이건, 우리가 원하는 단백질을 체내에서 합성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 이론이 정립되고 30년이 지난 1990년대에도, 여전히 엠알엔에이를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체내로 주입된 엠알엔에이가 쉽게 분해되고 심각한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엠알엔에이를 치료제로 개발하려는 커리코의 계획서는 심사에서 계속 탈락했고, 소속 대학은 그를 조교수에서 연구원으로 강등시켰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만난 연구 파트너가 와이스먼이었다. 헝가리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포닥)과 연구원으로 일하던 커리코와 달리, 와이스먼은 보스턴대학에서 의사과학자로 복합 박사학위(MD-PhD)를 받고,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이끄는 미 국립보건원(NIH) 연구실 포닥을 거쳐 펜실베이니아대학 조교수로 막 부임한 면역학자였다.
알엔에이를 활용하여 백신을 만들고 싶었던 면역학자와 인체의 면역반응을 견뎌내는 알엔에이를 만들고 싶었던 생화학자는 ‘왜 실험실에서 합성한 알엔에이가 체내에서 이물질로 여겨져 분해되고 염증을 일으키는지’에 관한 해답을 찾기 위한 협업 연구를 1997년부터 시작하였다. 그 협업 과정에서 드디어 2005년 우라실(U)이란 염기를 변형시키면 실험실에서 만든 알엔에이가 인체에서 분해되지 않고, 염증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는 엠알엔에이를 백신과 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 획기적 발견으로, 수년 내 여러 기업이 바이러스와 암 백신, 세포 치료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엠알엔에이 플랫폼을 활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15년 뒤 코로나19 사태를 당하면서 역사상 최단기간인 10개월 만에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백신을 만들 수 있었다. 치료용이든 예방용이든, 원하는 단백질을 체내에서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엠알엔에이 기술은 생명공학과 여러 의료 분야에서 거의 무한대의 확장성을 가지며 적용되고 있다.
이들의 성공 사례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우선 이들의 협업이 시작된 시점이 5년 이상 포닥 과정을 거쳐 비전임 연구자와 신진 교수로 일할 때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사학위를 갓 끝낸 연구자들은 연구 생태계에서 연구 활동이 가장 왕성하고 창의성 높은 인적자원들로 과학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소속 기관에서 포닥, 연구교수, 연구원 등 다양한 직급의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이들은 대부분 수행하는 과제의 연구비에서 인건비를 받는다.
교육부 통계 중 비전임교원(강사, 겸임교원, 초빙교원 등)에 연구교수 일부가 포함되어 있으나, 이들 대부분은 국가 통계에 잡혀 있지 않다.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가 2017년부터 발간한 다양성보고서에 이들을 비전임연구원으로 지칭하여 통계를 내기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기관 중에는 처음일 것이다. 비전임 계약직 연구자들이 과학 발전과 연구 생태계의 성장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인건비를 연구비 예산에서 해결하는 계약직일지라도 이들의 직급과 처우를 정부와 소속 기관이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지원해야 한다.
과학 부문 노벨상은 최고가 아닌 최초의 연구에 주는 상이다. 장차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가늠이 안 되는 상태에서 찾아낸 지식이 결과적으로 인류에 크게 기여하게 된, 그 최초의 연구들에 주어진다. 그러한 연구는 막대한 연구비를 쓰는 공장식 연구실보다는 끈기 있게 호기심을 풀어가는 소규모 연구실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미 입증된 연구로 큰 연구비를 딸 수 있는 대가들보다, 기지개를 켜는 신진 박사들에게서 미래의 노벨상 수상을 더 기대할 수 있다.
설사 노벨상을 타지 않더라도, 높은 가성비로 국민의 세금을 몇배로 되돌려줄 수 있다. 신진 박사들이 대부분인 비전임 연구직을 보호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풀뿌리 연구실들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의 재정지출 중 극히 작은 부분인 이 영역이, 내년도 예산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해 있다. 비전임연구원들을 지원하는 교육부 신규연구비가 전액 삭감되었고, 과기정통부의 소규모 기본연구비 또한 전액 삭감된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노벨상을 바란다면, 미래의 성장 동력을 계속 키워가려 한다면, 장차 선택과 집중 지원의 대상이 될 신진 박사 풀(pool)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이들을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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