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차 고르기

서울문화사 2023. 11. 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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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녀가 인생 첫 차를 사면서 고민한 것. 첫 차를 사고서야 깨달은 것. 차를 타는 동안 새롭게 다짐한 것.

“사람들은 서울 지하철이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저는 동의 못합니다. 너무 더워요.” 33세 미혼 남성 K씨는 올해로 서울 직장 생활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3월부터 에어컨을 틀 만큼 더위를 많이 탄다. K씨는 스스로 인내심이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지만 지하철 더위만큼은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때마침 코로나19도 겹쳤다. 그렇게 서른이 되던 해 K씨는 인생 첫 차를 구입했다. “르노 XM3 풀옵션이었어요. 색깔은 실버. 전시장에서 처음 본 색깔 그대로 구매했습니다. 딱 통장에서 빠져도 될 만큼의 금액이었어요. 주문하고 3주 만에 받았습니다.” K씨가 첫 차를 살 때 우선순위로 둔 것은 현실성 있는 가격, 빠른 인도 시기,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변수의 연속. 그는 차를 사고 인생을 새롭게 배웠다. “서울에서 지하철 타는 것보다 더 힘든 게 뭔지 아세요? 주차장 찾는 겁니다. 골칫거리를 해결하려고 샀는데 더 큰 골칫거리가 있더라고요.” K씨는 1년 반 만에 XM3를 팔았고 지금은 대중교통만 이용한다.

지방에 사는 이들은 어떨까? 30세 남성 L씨는 2019년 금융 공기업에 입사했다. 첫 발령지는 경기도 수원이었고 지금은 전북 익산에서 근무한다. 그는 취직 첫해 2018년식 중고 쉐보레 말리부를 구입했다. “원래는 중고 미니 쿠퍼를 사려고 했어요. 승차감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상사들을 태우고 출장 다닐 일이 많거든요. 여자친구도 있고요.” L씨는 승차감을 고려해 세단을 골랐다. 그럼 왜 하필 중고 말리부여야 했을까? “쉐보레는 국산 브랜드에 비해 감가가 큽니다. 중고차는 옵션을 싸게 갖추려고 사는 건데 1년만 지나도 1천만원 넘게 떨어져요.” 그가 구입한 말리부는 블랙 색상에 풀옵션 모델이다. L씨는 4년간 말리부를 타면서 거의 모든 것에 만족했지만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사회 초년생 때는 이사할 일이 많더라고요. 놀러 갈 일도 많고요. 세단은 짐을 실을 수 없어요. 길이보다 높이가 문제더라고요. 다음에는 전기 SUV 살 겁니다.” 건실한 직장인 L씨는 실용성과 범용성을 따져 차를 구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현대 사회에서 명함 역할을 한다. 그게 얼마나 합리적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인이 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차는 옷차림의 연장선이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미혼 여성 J씨는 신발 사듯 첫 차를 구입했다. 1996년식 폭스바겐 골프 3세대다. “골프가 사고 싶다기보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차를 사고 싶었어요.” J씨는 평소 옷과 신발을 고를 때도 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를 보고 구입한다고 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1세대 골프만을 디자인했다. 그런데 왜 3세대일까? “골프 1세대는 정비성이 너무 떨어지고, 2세대는 매물이 워낙 적어요. 저는 카브리올레를 사고 싶었거든요. 차주가 죽지 않는 한 빈티지 골프 카브리올레는 매물이 안 나와요. 그래서 지붕이 절반 열리는 3세대를 샀죠.” J씨는 약 2년간 3세대 골프를 타다 지난해 되팔았다. “냉각수가 터지더니 머플러가 끊어지더라고요. 수리비가 신차 가격이랑 맞먹었어요. 놓아줄 때가 온 거죠.” J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사가 떠올랐다.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L씨의 첫 차 구매기는 연애 이야기 같았다. L씨는 30세 미혼 여성이다. “스포츠 모드가 있는 외제 차를 사고 싶었어요. 이것저것 정말 많이 시승해봤는데 구매 가능한 가격 선에서는 미니 쿠퍼가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사람에게도 차에게도 재미는 큰 장점이 된다. L씨는 2018년식 미니 5도어 해치를 신차로 구입해 지금까지 운용 중이다. “지금은 덩치 큰 차가 좋아요. 짐도 짐이지만, 도로에서 작은 차는 시비가 많이 붙더라고요. 듬직한 차가 좋죠.” L씨는 자신을 비롯해 주변의 키 작은 여성들이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확히는 ‘큰 차’가 아닌 ‘까맣고 큰 차’였다. 살다 보면 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존재가 있다. L씨는 다음에 살 차로 랜드로버 디펜더를 고려 중이라고 했다.

첫 차를 사는 과정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점이 실은 중요함을 깨닫는 것. 장점 하나로 모든 걸 품을 수 있을 듯하던 생각이 금세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틈이 있다는 것. 그렇게 첫 차를 사고 타보고 팔다 보면 그 과정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게 된다. 차는 떠나도 경험은 남는다.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y : 표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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