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내미는 외로운 손을 잡고 가을의 문장을 읽다 [여여한 독서]

김이경 2023. 11. 3.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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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조은 옮김
글항아리 펴냄
ⓒ한성원 그림

가을에는, 다른 계절엔 없는 문턱이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턱에 발을 찧고 눈물을 찔끔거린다. 올해도 어김없다. 찔끔, 눈물의 기미가 느껴지자 엉엉 울고 싶어졌다. 약속도 의무도 다짐마저 뿌리치고 오직 우는 것으로 일을 삼고 싶었다. 그래서 모두의 미움을 받는대도 상관없지 싶었다. 어차피 저물기 마련인 세월 아닌가. 울기로 들면 이유는 많았다. 무엇보다 내겐 가을의 수확이 없었다. 모든 계절을 종종걸음으로 지나왔건만. 나는 세상 가엾은 나를 위해 울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때, 멀고 먼 하늘에서 도착한 황야의 문장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쓸데없는 일을 찾아줘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이유가 생긴다.”

잔뜩 도사렸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젊은 시절 하릴없이 들판을 어슬렁거리면서 좋은 삽이 아까워 괜히 구덩이를 파고 메웠다는 류량청. 중국 신장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와 나 사이엔 별 닮은 점이 없는데, 이상하다. 처음 본 그의 문장이 가을비처럼 속속들이 스며든다. 나 또한 평범한 사람이고 쓸데없는 일로 살아갈 이유를 삼아온 까닭인가.

연휴 직전 동네 서점에서 류량청의 〈한 사람의 마을〉을 발견했다. 낯선 작가였지만 첫 서너 줄을 본 순간 느낌이 왔다. 이건 사야 돼. 매일 조금씩, 두꺼운 책을 아껴 읽었다. 더도 덜도 없이 길고 적막한 추석 연휴를 시들지 않고 촉촉하게 지났다. 류량청은 “삽은 이 세상이 내미는 외로운 손이기에 꽉 움켜쥐어야 한다”고 했거니와 내게는 책이 삽이지 싶다. 나는 계절의 문턱에서 이 세상이 내민 외로운 손을 움켜쥐었고 그에 기대 무사히 가을로 들어섰다.

류량청은 농기계 관리인으로 일하며 혼자 시를 쓰다가 1998년 산문집 〈한 사람의 마을〉을 펴냈다. 책은 엄청난 찬사와 함께 수십만 부가 팔렸고 벽촌에 사는 작가의 이름은 대륙 전역으로 퍼졌다. 가끔 허명을 얻는 이도 있지만 그의 경우는 아니었다. 550쪽을 빼곡히 채운 문장들 어디에도 허술한 데가 없다.

소설도 비평도 아닌 산문으로, 더욱이 다른 사람의 글이나 책을 인용하는 일 없이 오로지 자신의 언어로만 이리 울울창창한 글을 썼다니 참으로 놀랍다. 한데 더 놀라운 건 이 모두가 한 마을의 이야기란 사실이다. 〈한 사람의 마을〉에 실린 78편의 산문은 모두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황사량에 관한 이야기다.

류량청은 서른몇 가구 백수십 명이 사는 작고 궁벽한 시골 마을로부터 두텁고 웅숭깊은 이야기를 빚어낸다. 남다른 필력, 시적인 문장이 한몫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어떤 힘일까 궁금했는데 그가 한 말에 답이 있었다. “내가 가장 외로웠던 시절, 한 마을의 기나긴 세월 속에 홀로 남아 만물의 넋이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 나중에 내가 입을 열자 만물이 듣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다. 물아(物我)를 나누지 않는, 경계를 잊은 마음. 이 마음으로 그는 마을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보고 느껴 고스란히 제 안에 받아들인다.

경계 없는 그의 눈은 믿기지 않을 만큼 밝다. 나는 이때까지 무수히 많은 모기에게 물려봤지만 모기가 젊었는지 늙었는지, 어떻게 내 피를 빨아먹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한데 류량청은 늙은 모기가 그의 팔뚝에서 피를 빨아먹고 배가 빨갛게 부푸는 모양을, 과식한 대가로 목숨을 잃는 과정을 두 페이지에 걸쳐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밥 짓는 연기에서 색깔을 보고 그걸로 땔감을 가늠한다. 쑥을 태우면 노란 연기, 위성류는 자줏빛 연기, 싹사울나무는 파란 연기… 그리하여 “우리 집 지붕 위 하늘은 다른 하늘과 다르고 (…) 마을 하늘엔 일곱 빛깔 연기가 피어오른다”라는 거짓말 같은 문장이 나온다.

‘오랜 밑바탕’을 소망하며

〈한 사람의 마을〉, 류량청 지음, 조은 옮김, 글항아리 펴냄

그는 동네 소와 말의 발소리를 구분하고, 죽은 나무뿌리가 하는 말을 들으며, 지나온 자리마다 달라지는 바람의 모양을 읽는다. 그 바람 속에서 먼 데를 바라보는 말의 무심한 시선을 부러워하고, 천지는 물론 귀신까지 기겁하게 하는 나귀의 울음소리를 갈망하며, 사람보다 앞서 밀밭에 나온 쥐들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사람들은 매일 쉬지 않고 일하며 때론 자신이 큰일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그가 보기엔 아주 작은 풀이며 벌레도 큰일을 한다. 사람이 애써 가꾼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집을 무너뜨리는 건 그들이다.

그러니 여기에 작고 큰 일이 어디 있으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란 무엇이겠는가. “사람의 일생 속에서 일은 쓸쓸하고 황량하다.” 이는 허무이지만 또한 허무만은 아니다. 류량청은 오래 산 집에 있는 ‘오랜 밑바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테면 땔나무 더미 아래는 다 썩어버린 ‘땔나무 밑바탕’이 있다. 땔감으로는 쓸 수 없지만 아무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이게 있어야 새로 쌓은 땔나무가 눅눅해지지도 썩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일, 사람의 일생이란 이런 밑바탕에서 시작해 밑바탕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 밑바탕조차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쓸모를 잃게 하는 세월을 묵묵히 견딘 이만이 오랜 밑바탕이 될 수 있다. 세월을 이기는 쓸모를 남길 수 있다. 그때까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우리 안의 “가장 머나먼 황무지인 마음자리를 한평생 잘 가꾸는 것”뿐. 눈앞의 잡초를 베는 것보다 마음속의 잡초를 없애는 것이 더 어려우니 이 일을 끝내고 나도 한 줄기 고운 연기로 하늘을 물들이리, 오는 가을에 당찬 소망을 실어 보낸다.

김이경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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