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만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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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댓권 소설을 훑다 이 소설을 펴든 뒤 놓지를 못했다.
열네살 여중생이 결국 '무너지나' '무너지지' 일던 조바심 탓이다.
"사랑하지 않"은 나와의 술래잡기이자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치러야 하는 재회다.
아빠는 아이엠에프(IMF) 때 부도난 뒤로 엄마의 눈썹 문신 시술업이나 돕는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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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 사는 숲
장진영 지음 l 민음사 l 1만4000원
너댓권 소설을 훑다 이 소설을 펴든 뒤 놓지를 못했다. 열네살 여중생이 결국 ‘무너지나’ ‘무너지지’ 일던 조바심 탓이다. 주인공이 -자타의적 일탈의- 삶을 견딘 건지, 삶이란 게 본래 견뎌지게 마련인지, 아니면 작가가 견뎌 인물을 살린 건지 묘연하다. 주인공 ‘나’가 되뇌는 말처럼 “사람은 슬플 때가 아니라 헷갈릴 때 눈물이 난다.”
2019년 등단한 장진영 작가의 신작 ‘치치새가 사는 숲’은 중학교 진학과 함께 닥친 잔인한 봄철과 그 한철을 기억하는 서른 중반 여자의 이야기다. 소설은 20년 전을 견딘 훗날의 의미 내지 과거와 오늘 사이 모종의 인과에 기웃대지 않는다. 먼 훗날에도, 어떤 이유에서건 견딜 수 없는 그때가 소실되지 않은 채 고스란하다는 사실만 보인다.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 기억의 숲을 다시 헤매듯 밟도록 한다. “사랑하지 않”은 나와의 술래잡기이자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치러야 하는 재회다.
초등학생 때 왕따를 당한 ‘나’는 중학생이 되어 학폭 가해자가 된다. 같은 학교에서 드물게 같은 중학교로 배정된 “극악무도하고 아름다운 여신” 달미의 하수인을 자처한다. 나를 그루밍한 달미와 첫 키스도 한다. 교복 속 팬티를 남학생들에게 슬쩍 내비치곤 한다. 나는 엄마도 데리고 다니지 않을 만큼 못났다. 이젠 용돈을 벌어오라 일을 시키는 엄마. 아빠는 아이엠에프(IMF) 때 부도난 뒤로 엄마의 눈썹 문신 시술업이나 돕는 한량. 둘은 나의 생일은 물론 성적에도 관심이 없다. 그런 부모도 손찌검은 하지 않았다. 중학생 첫봄 학생주임에게 처음 뺨을 맞고 추행당한다. 그나마 공부를 좀 했던 때다. 학생들은 나를 “걸레”라 수군대기 시작한다. 언니가 다니던 공장 본사 관리직과 성교제(?)를 하기 전인데도 말이다.
‘나’의 불온과 일탈은 정연하지 않고, 윤리로 재단되기 어렵다. 어른다운 ‘어른의 부재’는 ‘음식의 부재’로도 환유된다. 성장기, 환대를 필요로 하는 원초의 욕망을 가리킨달까. 달미의 엄마가 내어준 계란찜, (알고 보니 변태성욕자인) 공장 본사 그 간부가 차려준 소고기 밥상에 나는 속절없이 흔들렸다. 문 잠근 채 딸들 몰래 고기를 구워 먹던 부모의 탓이 적지 않겠다. 한 위기의 국면이 주인공 가족의 식사로 -일단- 봉합되려던 형국도 한 맥락에서 읽힌다. 언니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다.
“나는 불행한 기억을 사랑했다. 불행에 집착했다. 마음속 보석함에 불행한 기억을 모았다….” 이토록 지독한 자기부정과 저주의 까닭을 ‘나’라 한들 설명해낼까. ‘나’는 간부와의 관계조차 사랑이라 기억하는 나와 나조차 사랑하지 않은 나 사이에 있다.
소설은 짧은 문장과 빠른 호흡으로 독자를 흡입한다. 접속사가 없다. 기억의 편린을 한컷씩 잡아챌 뿐이다. 유려한 말맛으로 불행의 활사가 극대화되니, 현실보다 소설이 모질다. 그래도 ‘나’는 붕괴되지 않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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