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고급 창부다, 임신 중절이다 [책&생각]

임인택 2023. 11.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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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카와 사오의 ‘헌치백’
중증장애 작가의 도발적 데뷔
“꼽추 괴물”의 성권리 펼쳐
일본 문학 담대히 확장시켜
올해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이치카와 사오(44). 시상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헌치백’의 주제 중 하나는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으로, 강자, 약자의 구도 또한 고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허블 제공

헌치백
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l 허블 l 1만2000원

이번주 국내 출간된 소설 ‘헌치백’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아쿠타가와상 올해 수상작이다. 얕잡아 이르길 ‘꼽추’를 뜻하는 영어 제목(Hunchback)으로, 14살 때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살아온 44살 중증 장애 여성이 내놓은 데뷔작이다.

이 사실만으로 올 7월 일본 출판계는 들썩였다.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명예교수가 한겨레에 “일본도 문학 독자들이 줄고는 있지만 실로 놀라운 현상이 있었다”고 말한 배경이기도 하다. ‘문학계’ 신인상(5월)과 아쿠타가와상을 연이어 거머쥔 ‘중고 신인’ 작가의 이름은 이치카와 사오(44).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연애, 판타지, 에스에프 등 비주류 소설 공모에 응모해왔다.

‘헌치백’은 애초 아쿠타가와상을 겨냥해 쓴 소설이었다. 이치카와는 1일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문화 쪽에서 아쿠타가와상의 인지도가 가장 높고, 뉴스 속보로도 보도되는 건 이 상과 나오키상뿐”이라며 “아쿠타가와상 후보작들을 연구했고 지금까지 쓰여지지 않은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일본 문학계에 오랫동안 부재한 주제, 더 오랫동안 부재한 작가 범주를 직접 보공하기 위함으로, 장애 당사자가 도발적으로 드러내는 장애인의 성 권리가 그 일부라 하겠다.

작가와 분간되지 않을 만큼 유사점이 많은, 주인공 샤카는 꿈꾼다.

“다시 태어난다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임신과 중절을 해보고 싶다. 내 휘어진 몸속에서 태아는 제대로 크지도 못할 텐데. 출산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육아도 어렵다. 하지만 아마도 임신과 중절까지라면 보통 사람처럼 가능할 것이다. 생식 기능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평범한 여자 사람처럼 아이를 임신하고 중절해 보는 게 나의 꿈입니다.”

스스로를 “꼽추 괴물”로 이르는 자의 이 위악적인 소망이 지닌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1979년생 샤카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등뼈가 휘기 시작해 이제 오른쪽 폐가 짓눌린 형상으로 제대로 걷지 못한 지 30년째가 되어간다. 미오튜뷸러 미오퍼시 장애다. 근력 약화로 심폐 기능조차 유지하지 못한다. 기침을 못 해 담이 폐에 찬다. 코가 아닌 입과 목에 뚫은 구멍으로 호흡한다. 산소 포화도를 관리해야 한다. “숨 막히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람들의 너무 흔한 탄식을 샤카는 조소할 뿐이다. “이 사람들, 30년 전의 산소 포화도 측정기는 어떤 모양이었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이미 너무 오래 살아버렸어. 뼈도 폐도 너무 많이 찌부러져 버렸어. 잘못된 (몸의) 설계도로 지나치게 오래 살아버렸고…”

다만 부유한 부모의 유산 덕에 샤카는 장애인 시설 그룹홈의 소유주로서 몇몇 장애인, 간병인들과 함께 지낸다. 사회에 나갈 필요가, 때문에 감당해야 할 마찰도 없었다.

샤카와 사회의 유일한 접점은 -실제 작가도 했던- 고타스 기사(온라인 정보로만 가공해 만드는 홍보성 기사) 알바와 성인소설, 두번째 다니고 있는 통신대학, 거의 찾지 않는 트위터(지금의 엑스)다. 성적 은어와 신음 소리 가득한 글로 버는 돈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학자금 따위로 바로 기부된다.

샤카가 감정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세우는 대상은 둘이다.

쥐고 읽을 때마다 등뼈를 휘게 하는 종이책에 대한 분노가 첫번째다. “종이 냄새” “책장을 넘기는 감촉” 따위를 내세우며 전자서적을 깎아내리는 비장애인들의 독서 취향을 독서 우월주의라 비난한다.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

두번째는 ‘태아 살해’의 욕망이다. “낳는 건 못 하더라도 지우는 것이나마 따라가고 싶”다. 저잣거리 흔한 인생들의 “흉내”밖에 되지 않겠으나 그조차도 아득한 일이다. 성적 권리와 조건이 엄히 충족되어야 가능하다. 작가가 한겨레에 밝힌바, “장애인은 무성(애)적 존재로 간주되고, 여성 장애인은 복합적 차별이라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갖는다.” 장애아에 대한 중절을 당연시하는 비장애 여성들과 살해당할 수 없다는 장애여성 어느 쪽도 낙태를 위한 임신을 욕망한다는 샤카를 지지만 하진 않을 것이다.

샤카는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윤리와의 충돌을 피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이미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가”는, 생명윤리의 모순을 감당 중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자신을 목욕시킨 남자 간병인(키 155㎝의 다나카)의 제안을 받아, 샤카는 임신과 중절에 이르기까지의 사례로 13억원이란 거액을 제시한다. 비장애인의 몸 1㎝당 100만엔을 친 것. 샤카는 성교 중 병원에 실려 간다.

별 볼 일 없는 비장애인 다나카는 “죽을 뻔하면서까지 할 일이냐” 연민하고, 장애인 샤카는 “(당신은) 돈에 대한 것만 생각하라” 연민한다. 하여 “꼽추 괴물”은 자학이면서도 동시에 자존의 언어로 읽힌다. 스스로를 “29년 전부터 열반에 들어갔다”는 표현 또한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괴물’이 되지 않고선, 투명한 존재가 되고 마는 세계에서의 도발적 자기 서사이고, 성은 에너지인 셈이다. 열반은 무성애자의 경지다.

소설의 마지막을 백미라 해야겠다. 고급 창부가 된 명문대 여학생(또다른 샤카, 紗花)의 이야기가 소설의 표정을 바꿔 전개된다. 장애인 샤카(繹華)의 오랜 욕망이질 않은가. 그의 온라인 계정이 ‘꽃 화’(花)자 들어가는 ‘샤카(紗花)’이기도 했으니 장애인 샤카의 욕망이 가상세계에서나 계속 펼쳐질 따름인지, 마침내 현실에서 실현된 것인지, 비장애 주류의 현실에서 무엄한 장애 여성은 끝내 사라지고 만 흔적인지 소설 뒤 소설을 두고 여러 해석이 가능해진다.

소설에선 한국 드라마, 노래, 음식이 인물들의 심리나 분위기를 빗대는 요소로 종종 활용된다. 이치카와는 한겨레에 “한국 문화는 이미 보편적이고 인기가 많다”며 “저 또한 넷플릭스를 통해 스튜디오드래곤의 드라마를 좋아했고, 지난해엔 ‘스타트업’의 한 인물에 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설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헌치백’이 문학상을 타기까지 일본 사람들은 (장애 여성이 감당하는) 장벽을 깨닫지 못했다. ‘헌치백’은 우리 사회에서 그 존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람의, 하나의 작은 목소리다. …이 작은 목소리, 삐딱한 주인공에 부디 큭큭큭 웃어주시길 바란다”고 썼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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