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나의 오른쪽 콩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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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강검진을 받았다.
나는 60여년간 어디에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던 나의 오른쪽 콩팥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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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강검진을 받았다. 2주쯤 지난 후 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콩팥에 문제가 있다며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길 권했다. 주변에 신장투석이나 신장이식 등으로 고통을 받은 이가 많아 덜컥 겁부터 났다. 머릿속의 나는 이미 콩팥전문병동에 누워 있었다.
‘신장투석 기간을 거친 다음엔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남편은 늙은데다 혈액형도 나와 다르고, 딸은 혈액형은 같지만 손자도 키우고 직장도 다녀야 하는데 신장을 구걸할 수도 없고. 암에 걸렸다면 암세포 표적수술법도 나왔다니 암세포만 죽이면 되지만, 신장 이식을 하면 몸도 팅팅 붓고 피로도가 심하다는데.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비참한 여생을 보내느니 차라리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선택해볼까…’ 생각만 들었다.
며칠 후 병원에서 전문의를 만났다. 그 의사는 내 오른쪽 콩팥이 건강한 왼쪽보다 크기가 70%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아마도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 걸린 신우신염과 쓸개 제거 수술 등이 원인인 듯했다. 특별히 콩팥병 증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콩팥병 강의도 듣고 소변검사 등을 하라고 권했다. 친절하고 상냥한 여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100세 시대라는데 줄어든 오른쪽 콩팥을 잘 돌보고 이 상태를 유지하셔야 100세까지 즐겁게 사시죠.”
그 말이 위안이 됐다. 내게 줄어든 게 오른쪽 콩팥뿐이랴. 키도 줄어들었고 기억력도 줄었고 머리숱도 줄었고 뇌세포도 줄어든 것 같다. 늘어난 것은 몸무게와 주름살과 흰머리, 그리고 배짱이다. 뭐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생각해보니 저명한 인사는 물론 지인들 가운데 신체기관 한두개가 고장(?)나도 장수를 누리는 이가 뜻밖에 많았다. 77세의 작가 줄리언 반스는 한쪽 귀가 거의 안 들리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썼다. 화가 앙리 마티스는 수많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85세에 눈을 감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암이나 뇌종양 수술을 받고도 건강을 회복해 일상을 즐기는 친구들이 바로 곁에 있다.
스스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주장하는 한 친구는 “병하고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을 불청객이나 악당으로 여겨 두려워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내 몸에 찾아온 친구이니 잘 있다가 잘 가기를 바라면 된단다. 나는 60여년간 어디에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던 나의 오른쪽 콩팥에게 말을 걸었다. “나의 오콩(오른쪽 콩팥)아. 네가 그렇게 열심히 나의 건강을 위해 헌신했는데 그동안 고맙다는 말도 못해서 미안해. 네가 상처받고 쪼그라들어서야 겨우 신경을 쓰는 것도 부끄럽다. 어쩜 네가 신음소리를 냈을 수도 있고 발버둥을 쳤는데도 둔감해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서 내 마음도 아프다. 이젠 네게 나쁜 음식도 조심하고 혈관이나 다른 장기들과 잘 지낼 수 있게 운동도 할게. 콩쥐처럼 너만 혹사시킨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아줘.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마지막 숨을 쉬는 그날까지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면서 살자.”
나는 모든 몸 부위 하나하나에 고해성사와 사과문을 낭독했다. 계속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려는 아부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방치하고 학대하는 게 유죄라면 나는 죄인이다. 감형을 위한 아부나 탄원서가 아니라 남은 삶을 책임지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 몸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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