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고수되기] 꿀벌 없는 세상은 결실 없는 가을…달콤한 꿀도 얻고 환경도 지켜요
벌 가득찬 벌통
둘로 나누는 분봉 체험
밀랍으로 미리 지은 집
‘소비’를 새 통으로 옮기면 끝
윙윙~ 소리는 요란해도
“온순하니 걱정 마요”
농작물 생산에
곤충 수분활동 중요
꿀벌 멸종하면
인류도 멸망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멸망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인간이 먹는 전체 식량의 33%가 꿀벌 수분활동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꿀벌은 인류 생존과 직결된 곤충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농산물인 사과·딸기·당근·양파·호박 등도 꿀벌 수분활동 의존율이 90% 이상이나 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이들 농산물도 영영 못 먹는 것이다. 꿀벌의 소중함을 알아보기 위해 충북 청주에서 토종벌을 기르는 양봉인 김대립 청토청꿀 대표(50)를 만났다. 이번 호에선 김 대표를 따라 분봉을 체험해봤다.
청토청꿀은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의 깊숙한 산골짜기에 있다. ‘이런 곳이면 꿀벌이 아니라 신선도 노닐겠다’ 싶을 정도로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메밀꽃밭’ 안내판이 등장한다. 갓 튀겨낸 팝콘 같은 3만3000㎡(1만평) 규모의 메밀꽃밭이 김 대표보다 먼저 손님을 반긴다.
“서울에서 오셨죠. 고생 많으셨어요!”
메밀꽃밭을 헤치고 김 대표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3대째 청주에서 토종벌을 키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행정안전부에서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된 것은 물론, 양봉기술과 관련된 여러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저 뭐부터 할까요?”
기자가 소매부터 걷어 올리자, 김 대표가 서두르지 말라며 말린다. 그에 따르면 ‘양봉은 불로소득(不勞所得)’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부보다 벌이 일을 많이 한단다. 일단 꿀벌이 있는 메밀꽃밭을 서서히 돌아보라는 그의 말에 길을 나섰다. 메밀꽃밭은 산줄기부터 평지까지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었다. 9월말부터 10월까지가 절정인데 날이 따뜻해서인지 꽃이 아직도 남아 있다. 평일인데도 메밀꽃밭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손님들이 쉴 틈 없이 찾아왔다. 특히 꽃밭 한가운데 있는 그네는 유명한 ‘포토존’이다. 메밀꽃밭엔 한해 적게는 6만명, 많게는 15만명이 찾아온다. 명실공히 청주 명소인 셈이다.
언뜻 보면 요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할 법한 ‘감성 꽃밭’이지만, 군데군데 벌통이 숨어 있었다. 메밀꽃밭에 벌통만 모두 400개 있단다. 주변엔 산이 있어 나무도 많다. 이는 벌의 먹잇감인 꿀도 많다는 뜻이다. 벌이 꿀을 가져오는 원천이 되는 곳을 ‘밀원(蜜源)’이라고 한다. 밀원이 잘 조성된 곳일수록 좋은 꿀이 난다.
“코로나19 때도 인파를 피해서 오는 분이 많았어요. 벌은 메밀꽃에서 꿀을 얻고, 찾아온 방문객은 예쁜 사진을 남기죠.”
김 대표는 기자에게 ‘분봉’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토종꿀은 보통 1년에 한번, 많으면 두번 따는데 꿀을 따기엔 시기가 약간 이르다는 판단에서다. 분봉은 벌통 한개를 두개로 만드는 작업이다. 꽉 찬 벌통에 있던 벌을 새 벌통에 옮겨 벌통수를 늘리는 것이다. 양봉할 때 꼭 필요한 기술이다.
먼저 분봉할 벌통을 찾으러 메밀꽃밭을 쏘다녔다. 벌통 가까이 가자 ‘부웅 부웅’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갈수록 소리는 더욱 커졌다. 분봉하려면 꽉 찬 벌통이 좋다. 벌통이 비좁으면 꿀벌도 더이상 집을 못 짓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벌통 몇개를 들더니 “이게 좋다”고 골랐다. 나무로 된 벌통 아래쪽의 문에서 꿀벌이 모습을 빼꼼 드러냈다. 벌통은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무겁다. 무게는 5㎏ 정도 됐다.
“분봉작업을 꿀벌 시집보내기라고 해요. 벌통엔 여왕벌이 딱 한마리 있는데, 분봉을 통해서 다른 통에도 여왕벌을 만들어주는 거죠.”
옆엔 꿀벌이 이사할 새 벌통을 준비했다. 벌통을 열자 망으로 덮여 있었다. 꿀벌이 지붕까지 집을 짓지 않도록 막아놓은 것이다. 망을 걷어내면 비로소 꿀벌과 꿀이 나온다. 벌이 잔뜩 밀집해 있는데 이들이 내는 ‘부웅’ 소리는 귀가 따가울 정도다. 벌통 한개에 최소 5000마리에서 1만마리의 벌이 있단다. 예전에 “벌은 안 움직이면 안 쏜다”라는 말을 들어 얼음이 된 듯 가만히 있으니 김 대표가 “꿀벌은 온순하다”며 안심시켰다. 그의 말대로 꿀벌은 기자의 손에 내려앉거나 소매 끝에 붙어 있을 뿐 쏘지는 않았다.
벌통엔 몇개의 ‘소비’가 있다. 소비는 벌이 꿀을 편하게 저장하도록 밀랍으로 미리 집을 지어놓은 도구다. 그곳에 벌은 알을 낳거나 꿀을 보관한다. 벌통을 잠깐 열어놓으니 그사이를 못 참고 노린재가 벌통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 온다. 쫓아내려 하자 김 대표가 괜찮단다. 웬만해선 벌통에 감히 침입할 수 없단 것이다.
“한개의 벌통 내에도 역할이 나뉘어 있어요. 여왕벌, 여왕벌과 교미를 하는 수벌, 일벌이 있죠. 일벌 중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내역벌과 멀리서 꿀을 캐오는 외역벌로 나뉘어요. 문을 지키는 문지기벌도 있어요. 벌통 한개가 하나의 사회라고 보면 돼요.”
분봉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벌이 가득 찬 소비를 새 통으로 옮기면 끝이다. 소비를 들어 올리자 꿀이 진득하게 흘러나와 옷에 묻었다. 그새를 못 참고 일벌 한마리가 옷에 붙어 꿀을 쪽쪽 빨아 먹는다. 요즘엔 ‘일을 쉽게 한다’는 뜻으로 ‘꿀 빤다’라는 신조어가 쓰이는데, 벌이 꿀을 빠는 모습을 보면 그 말을 함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벌은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분주히 꿀을 빨아 소비로 옮긴다.
“여왕벌이 한마리라고 하셨는데 분봉하면 여왕벌이 어딨는 줄 어떻게 알죠?”
말하기가 무섭게 김 대표가 벌통 두개를 열어 보여준다. 한 벌통은 윙윙 소리가 잠잠한데, 다른 벌통은 윙윙 벌들이 분주하다. 분주한 쪽이 여왕벌이 없는 벌통이다. 이곳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벌 가운데 여왕벌을 선출하게 된다. 또다시 제 역할을 하며 겨울이 올 때까지 부지런히 꿀을 따서 나르는 것이다.
분봉까지 마치니, 김 대표가 벌을 쓱쓱 치우고 벌집을 툭 잘라 맛보라고 내민다. 진득한 꿀이 뚝뚝 흐른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토종꿀이다. 입에 한가득 베어 무니 기분 좋은 단맛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져 기운이 넘쳐흐른다. 꿀벌들이 한해 동안 일한 수확물이다. 양봉농가는 첫서리 전 꿀을 따서 상품화한다. 보통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채밀한다.
“꿀벌 없는 세상은 결실 없는 가을이에요. 사람들이 환경보호에 더 힘써야죠. 꿀벌이 살기 좋은 세상은, 곧 우리도 살기 좋은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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