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대작 사교장이었던 ‘대구 춘앵각’ 역사 속으로… 주차장 들어서
대통령과 유명 배우 등이 찾았던 대구의 고급 요릿집 ‘춘앵각’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주차장이 들어섰다. 1980~1990년대 1인당 20만~30만원씩 하던 고급 요릿집이 10분에 800원 받는 유료 주차장이 된 것이다.
대구 중구는 춘앵각 부지였던 중구 상서동 20의 2에 조성된 유료 주차장이 최근 영업을 시작했다고 2일 밝혔다. 대원각, 삼청각 등 서울의 유명 요정(料亭)과 경쟁하던 춘앵각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대구 출신 배우 신성일 등도 들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대구로 발령받거나 출장 오는 중앙 부처 고위 관료들도 필수 코스로 들르던 곳으로 전해진다.
대구 요정 업계 대모 나순경(90)씨가 1969년 춘앵각을 차렸다. 그는 1980년대 18개 요정 사장을 모아 ‘길우회’라는 모임까지 만들었다. 춘앵각은 494.9㎡(149.7평) 부지에 기와 지붕, 목조 건물 2채가 있는 전형적인 한옥 식당이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한복 입은 여성 종업원들의 시중을 받으며 술과 식사를 즐기던 곳이다. 가끔 가야금이나 판소리 연주도 울려 퍼졌다고 한다.
나씨는 기관장들이 서울로 발령 나서 돌아갈 때는 꼭 순금으로 된 ‘행운의 열쇠’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 대구를 다시 찾는 손님들은 꼭 다시 춘앵각에 들러 나씨를 만났다고 전해진다.
춘앵각은 1990년 후반 룸살롱 등 유흥주점이 인기를 끌면서 쇠락했고, 2003년 말 문을 닫았다. 이후 식사만 하는 한정식 식당 ‘춘앵각’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가 코로나 여파로 2020년 5월에 유흥주점, 같은 해 6월 일반음식점마저 폐업 신고를 했다.
그대로 비어 있던 춘앵각은 지난 4월 바로 옆 영화관 측에 매각돼 건물이 헐렸다. 영화관은 현재 ‘롯데시네마 프리미엄 만경’이 운영 중인데, 이 자리 역시 1922년 일제 때 지어진 ‘만경관’이라는 단관 극장이 있던 곳이다. 앞서 2021년 대구YMCA가 매입 후 춘앵각 건물은 그대로 보존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여성 단체의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신인 김태일 장안대 총장은 “유흥 시설이었던 데다 일반 시민이 아니라 일부 사람이 향유하던 공간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한국 현대사의 이면, 숨은 이야기들이 저장된 곳이 사라진 점에선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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