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넘긴 대한항공, 화물 떼고 아시아나 품을까

박지연 2023. 11. 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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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재개한 이사회서 5명 중 3명 찬성 '가결'
대한항공, 즉시 시정안 제출, EU 이틀 후 접수 예상
美·日 최종 승인하면 국토부, "빠르면 올해 중"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열린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계류장에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여객기가 주기돼 있다. 이날 이사회는 7시간 30분 동안 격론이 오간 끝에 결론을 내지 못하고 정회했다. 2일 다시 열린 이사회에서 화물매각 안건은 가결됐다. 영종도=하상윤 기자

국내 항공업계의 미래를 좌우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사흘의 진통 끝에 화물사업부를 내다 팔기로 결론 냈다. 대한항공은 곧바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화물사업부 매각 방안을 담은 시정 조치안을 냈다. 필수 심사국 중 가장 중요한 관문으로 꼽히는 EC 승인에 한 발짝 가까워지면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2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화물사업부 매각을 포함한 대한항공과 M&A를 두고 논의한 결과 해당 안건을 가결했다고 공시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당사 이사회는 인수인(대한항공)과 당사가 체결한 신주인수계약 관련 거래 종결 선행 조건 충족을 위해 인수인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제출하는 시정 조치안의 제출에 대한 동의 여부를 논의하여 해당 안건을 원안대로 가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날 오전 7시 30분 시작한 이사회는 오전 11시쯤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일한 사내이사인 원유석 대표와 사외이사 세 명이 참석했다. 사외이사 한 명은 이사회에 나왔지만 결의에는 불참했고 다른 한 명은 기권표를 던졌다고 아시아나는 전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공시가 나온 뒤 EC에 시정 조치안을 보냈다. 회사는 이날 입장을 내고 "두 회사 이사회가 (화물사업부 매각을) 승인하면서 유럽 경쟁 당국에 시정 조치안을 제출하게 됐다"며 "남은 기업결합심사 과정에 긍정적 모멘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내 메가항공사 탄생, 남은 절차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분리매각 일지. 당초 지난달 31일까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시정안을 내기로 했던 대한항공은 2일 아시아나항공 이사회 결과가 공시되자 곧바로 EC에 시정안을 제출했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EC는 대한항공이 낸 시정 조치안을 이르면 3일(현지시간) 접수할 것으로 보인다. 1, 2일이 유럽연합(EU) 공휴일인 까닭이다. 기존 제출 기한보다 사흘 늦어진 셈이다. EC는 화물사업부 매각을 담은 시정 조치안을 승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EU 당국은 두 항공사가 합병하면 유럽~한국 주요 여객·화물 노선의 독점(경쟁 제한)이 우려된다며 바로잡으라고 했고 대한항공은 이에 화답해 슬롯 반납과 화물사업부 매각 카드를 꺼냈기 때문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여러 선택지를 제시했지만 EC는 번번이 퇴짜를 놨고 결국 화물 사업부 전체 매각이 유일한 대안이었다는 후문이다. 회사 측은 2024년 1월 말쯤 EU가 심사를 승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럽이라는 산을 넘어도 필수심사국인 미국과 일본의 승인이 필요하다. 대한항공은 "미국 법무부와 시정 조치안을 협의해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하고 일본 경쟁 당국과도 협의가 끝나는 대로 정식 신고서를 내 내년 초 심사 종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가장 까다롭기로 소문난 EU가 승인한 만큼 이후 과정은 순조로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정안이 수용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중복 노선인 프랑스 파리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바르셀로나 노선에 국내 다른 항공사들이 진입하는 한편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부문은 다른 항공사에 넘어간다. 어느 항공사인지 등 세부 사항은 EC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다.


자금 지원받는 아시아나항공, 숨통 트일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아시아나항공 슬롯 반납 및 화물사업 분리 매각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이날 결정으로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으로부터 수천억 원대 자금을 지원받아 경영상 어려움을 다소 해소하게 됐다. 앞서 대한항공은 지난달 30일 이사회를 열고 에스크로 계좌에 건넨 계약금 3,000억 원과 중도금 4,000억 원을 아시아나항공이 인출해 쓸 수 있게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다만 EC가 승인할 때까지 용도는 운영 자금으로 제한된다. 이후 EC로부터 기업 결합 승인을 받으면 인수 계약금 명목으로 받은 3,000억 원 중 1,500억 원은 이행 보증금이 된다. 만일 인수·합병 절차가 중단되더라도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이와 함께 대한항공에 3,000억 원 규모의 신규 영구전환사채를 발행했다. 기존에 있던 영구채를 회수했다가 금리를 낮춰 재발행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내부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회사 노조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명분도 실리도 국익도 없는 이번 합병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라며 "이번 결정으로 EU, 미국, 일본에서 거래 종결까지 회사의 경쟁력과 가치는 계속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사회 전날 사내이사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이사회 의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합병의 문제점에 대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 측은 "고용 승계와 유지를 조건으로 매각을 추진하고 대상 직원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한편 원활한 합의가 진행될 수 있게 하겠다"고 전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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