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KAL858 폭파 사건…살아있는 블랙박스 김현희와 성의가 없어 놓친 블랙박스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반드시 기억해야 할 100번째 그날이 공개됐다.
2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공작1987 - 살아있는 블랙박스'이라는 부제로 KAL858기 폭파 사건이 일어난 그날을 조명했다.
1987년 12월, 대한항공 858기가 버마 랭군 상공에서 실종됐다. 그리고 해당 여객기에는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 고된 시간을 보내다 가족들을 만날 기대감으로 비행기에 올랐던 많은 근로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을 포함해 총 115명이 탑승한 여객기는 중간 급유지인 방콕에 도착하지 않았고, 이에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 기착지였던 아부다비에서 하차한 승객들의 신원과 행적을 조사했고, 그중 수상한 2명의 승객을 포착했다.
일본 국적의 70대 남성 하치야 신이치와 20대 여성 하치야 마유미가 바로 그 문제의 승객들이었다. 이에 일본으로 두 사람에 대한 신원 조회를 요청했다. 그 결과 이들의 여권은 위조 져권이며 두 사람은 일본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바레인 영사와 항공사도 두 사람을 쫓고, 바레인 영사는 두 사람이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아내 직접 방문했다. 바레인 영사는 한국 외교관이라며 명함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고, 이에 나이 든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왔다.
영사는 "당신들이 탑승했던 비행기가 태국 근처에서 떨어져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라고 밝혔다.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자 영어로 답한 남성. 하지만 그와 영어 소통은 어려웠다.
이에 영사는 남성과 종이에 한자를 써서 필담을 나누었다. 남성은 20대 여성과 부녀 사이라며 유럽 여행을 하던 중 추워서 중동으로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일본식 한자가 아닌 우리식 한자를 쓰는 허점을 드러냈다.
다음날 새벽 바레인 공항으로 향한 두 사람, 두 사람은 출국 직전 바레인 공항에 구금됐다. 이에 신이치는 마유미를 향해 "난 살만큼 살았지만 마유미 씨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마유미는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고 급히 담배 밑부분을 깨물고 쓰러졌다. 특히 신이치는 그대로 쓰러져 미동도 없었다.
두 사람이 깨문 담배는 독약 앰플이 들어있던 담배. 이에 신이치는 그대로 사망했고, 마유미는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즉시 제지를 해서 살아남았다.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의심을 사게 된 두 사람. 이에 수사관은 마유미에게 이름과 국적을 물었다. 그러자 마유미는 본인이 불쌍한 중국인 고아라고 밝혔다. 또한 일본인 신이치의 집에서 일하다가 같이 여행을 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은 KAL기 실종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마유미의 압송을 담당한 안기부 최초의 여수사관 최창아 수사관. 그는 마유미의 자해를 막기 위해 마우스피스를 구매한 후 이를 그의 입에 물려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마유미의 압송 장면은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선거 바로 전날 있던 마유미의 압송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슈였던 것.
하지만 모두가 마유미와 선거전에 집중하던 순간 사라진 여객기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라졌다.
그러던 중 미얀마 해안에서 구명정이 발견되었고, 고유 일련번호를 확인하자 KAL858기의 것이 맞았다. 이에 폭발에 의해 추락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마유미가 압송된 후 조사단은 해당 여객기의 탑승객 전원 사망한 것으로 공식 발표를 하고 수색을 종료했다.
마유미는 조사에서 거짓으로 일관했고, 그러던 중 수사관들의 회유에 마음을 조금씩 돌렸다. 그리고 그의 진짜 이름이 밝혀졌다. 폭파범은 바로 북한의 김현희.
김현희는 1988년 1월 15일 진행된 사고 조사 결과 발표 자리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교육받고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남한 현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북한의 외교관의 딸이자 아역배우 경험도 있었던 김현희는 평양외대 일본어과 재학 중 당에 소환되어 8년간 공작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1987년 10월 김승일과 KAL858기의 폭파 임무를 부여받았던 것.
이들은 외교 문제로 번지지 않기 위해 외국인 탑승객이 가장 적은 비행기를 선택했다. 또한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바다 위를 운항하는 비행기를 선택했다.
김현희와 김승일을 휴대용 라디오와 술병으로 된 시한폭탄을 준비했다. 바다 위를 운항하고 있을 시간을 계산해 시한폭탄을 설정하고 비행기 탑승 후 좌석 선반 위에 폭탄을 올려두었다. 그 후 경유지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폭탄만 남겨두고 떠났다.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낀 북한은 대한민국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공작을 펼쳤던 것.
김현희의 자백 후 여론은 이상한 쪽으로 번졌다. 그가 한 범행보다 그의 외모에 관심이 쏟아졌고, 이를 바탕으로 언론도 김현희에 우호적인 쪽으로 보도되었다.
유품뿐만 아니라 시신도 찾지 못한 유가족들에게 이는 너무나 분노할 사안이었다. 시신, 유품 하나 없이 사진으로만 채워진 희생자 분향소. 이와 대비되게 100명이 넘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범 김현희는 밖을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이 유가족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후 김현희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고, 1990년 3월 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런데 사형 선고 16일 만에 특별 사면 조치가 되었다. 사건 발생 2년 4개월 만에 그는 해당 사건에서 자유로워진 것.
북한은 KAL기의 폭파와 무관하다고 주장했고, 이에 정부는 김현희를 살아있는 블랙박스이자 역사의 산증인이라며 사면 조치했다. 이는 또다시 유가족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사고 3년 후 태국 어부들의 그물망에 걸려든 KAL858의 잔해들. 국과수는 정밀 조사를 거쳐 압축 충격에 의한 파손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동체 전체가 발견되지 않아 해당 사건의 원인을 찾는 완벽한 조사는 어려웠다.
그런데 해당 동체는 폐기 처분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특히 폐기처분에 대한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아 분노를 자아냈다.
해당 사건의 유가족은 이런 모습들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유가족은 "해당 여객기에는 중동에서 돌아오시는 근로자들이 대부분 타고 있고 외국인도 거의 없었다. 유가족들 중에도 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정부에 이야기를 하면 북한의 책임으로 돌리고 항공사에서는 사고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했다"라며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힘이 없어서 이렇게 되는구나 생각하게 됐다"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그는 "소설이나 영화처럼 회귀를 할 수 있다면 가장 돌아가고 싶은 날이 1987년 11월 29일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서 아빠에게 "그 비행기 타지 마세요"할 것 같다"라고 여전히 막고 싶었던 비극을 덤덤하게 말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여전히 바닷속에 가라앉은 비행기 잔해. 정부는 지금이라고 유가족들을 위한 최선과 성의를 다 해 그들에게 한이 아닌 힘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사건의 블랙박스에는 김현희라는 증거는 사람이라 담을 수 없었고 확실한 증거인 비행기 동체는 성의 부족으로 담지 못했다.
꼬꼬무에서 지금까지 돌아본 100번의 그날. 그날의 기록들이 꼬꼬무 블랙박스에 차곡차곡 쌓이면 이 세상도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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