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내려앉은 고택···대가들의 삶을 엿보다 [Weekend 레저]
조선 내로라하는 학자 정약용·윤증·정여창
노블레스 오블리주 원조 류이주 숨결 고스란히
인천 근현대사 품은 인천시민애집 이색 매력
서울 광화문 거리를 걷다가 문득 신호등에라도 걸려 서 있을 때면 주변 거리와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그러다 옛 임금이 살았던 경복궁 밖을 오가는 100년 전, 혹은 수백년 전 이들을 잠시 상상해본다. 하늘과 땅은 그대로인데 그때의 사람과 사물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경복궁 근정전이나 건축 당시 가옥의 형태를 잘 보전하고 있는 고택을 보면 과거 속 이들의 삶을 보다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언제, 누가 이 건물을 지었을까'부터 '식솔은 얼마나 되었으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등, 상념이 머릿속을 스친다. 옛 형태를 간직한 것만으로도 여행객의 발길을 붙들고 사색을 즐기게 하는 매력이 고택에 있다. 마침 한국관광공사가 11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고택 5곳을 소개했다. 가을의 끝자락, 아직은 포근한 한낮의 햇살을 즐기며 고택으로의 하루 여행을 떠나보자.
다산 정약용이 자고 나란 경기 남양주 조안면에는 그의 숨결이 서린 여유당(與猶堂)이 있다. 정약용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기념 인물이자, 조선의 대표 실학자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자, 정약용은 고향으로 내려와 사랑채에 여유당 현판을 걸었다. 여유는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라'는 뜻이다. 다산은 조심히 살겠다고 다짐했으나 이듬해부터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정약용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여유당에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정리했다.
선생이 실제 살던 생가는 1925년 대홍수로 떠내려가, 1986년에 원형에 가깝게 다시 세워졌다. 여유당 뒤 언덕에는 정약용선생묘(경기기념물)가, 언덕 아래에는 선생이 쓴 자찬묘지명이 있다. 이외에 다산의 자취를 전시한 기념관, 선생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문화관이 있다. 정약용유적지 건너편 실학박물관을 비롯해 팔당호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다산생태공원,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능내역도 둘러보면 좋다.
인천 중구에 있는 '인천시민애(愛)집'은 인천항 인근, 자유공원 남쪽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사업가가 저택을 지어 살던 곳을 인천시가 매입해 한옥 형태 건축물을 올리고 시장 관사로 활용했다. 이후 인천시청이 이전해 인천역사자료관으로 쓰이다가, 2021년 7월 재정비를 마치고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했다.
관사동이던 한옥을 개조한 '1883모던하우스', 앞마당과 정원을 포함한 '제물포정원', 경비동 건물을 '역사전망대'로 재구성했다. 일본식 가옥이나 시장 관사였을 때의 흔적이 곳곳에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기분이 든다. 내부는 전시관 역할을 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랑채, 오른쪽으로 대청마루와 디지털갤러리, 시장 관사 시절 안채로 쓰인 랜디스다원 등이 이어진다. 사랑채쉼터는 탁 트인 유리창 너머로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기에 좋다.
충남 논산에 있는 명재고택(국가민속문화재)은 평생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 연구와 후대 교육에 전념한 조선시대 대학자 명재 윤증의 집이다. 3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간직한 고택은 뒤쪽으로 선 고운 산이, 마당에는 단아한 인공 연못이 있어 조화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고택은 안채와 광채(곳간채),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된다. 고택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는 사랑채는 앞면 4칸에 옆면 2칸 규모로, 안채와 달리 담 없이 개방된 형태다. 정면에서 볼 때 중앙이 사랑방이고 오른쪽에 대청, 왼쪽에 누마루를 배치했다.
곳곳에 있는 창이 액자가 되어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른 풍경화를 담아낸다. 미닫이와 여닫이 기능을 합친 안고지기를 활용한 사랑채, 일조량과 바람의 이동을 고려한 안채와 광채의 배치가 돋보인다. 열을 맞춘 장독대와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의 고목도 운치를 더한다. 후손이 거주하고 있어 지정된 장소만 관람이 가능하며, 사랑채와 안채에서 한옥 스테이도 가능하다.
경남 함양에 위치한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은 일두 정여창의 집이다.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은 동방오현에 오른 유학자로 평가 받는다. 지금 남은 고택은 정여창이 세상을 뜨고 약 1세기가 지나 건축했다. 입구 솟을대문에 정여창 가문이 나라에서 받은 정려 5개가 있다. 건축한 지 수백년이 흘렀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해 영남지역 양반 가옥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너른 마당이 나오고,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사랑채가 보인다. 높게 쌓은 기단이며 반듯한 돌계단, 앞으로 튀어나온 누마루와 마당에 조성한 석가산 등이 웅장한 인상을 풍긴다. 누마루 천장 모서리에 걸린 탁청재(濯淸齋) 편액이 주변 경치와 잘 어울린다. '탁한 마음을 깨끗이 씻는 집'이란 뜻이다.
전남 구례에 위치한 운조루(雲鳥樓·국가민속문화재)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을 담고 있다. 1776년 류이주가 낙안군수를 지낼 때 지은 집으로, 너그럽고 포근한 정취가 으뜸이다. 250년 가까이 잘 보존된 외관에서 고택에 스민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택 전체는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 사당, 연지로 구성돼 규모가 제법 크지만, 화려한 장식 없이 소박하다. 현재 운조루는 10대손 류정수씨가 지키고 있다.
운조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채는 여름에 해를 가리고 겨울에 바람을 막는 들어열개가 있다. 부드러운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랑채 누마루는 뛰어난 운치를 자랑해 운조루의 백미로 꼽힌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류씨 집안은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새긴 뒤주에 쌀을 채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이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고택 인근 운조루유물전시관에 가면 류씨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유물과 고택에 있던 현판, 타인능해 뒤주 실물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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