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맞춰드립니다"... 전청조가 동원한 사기 도우미, '역할 대행'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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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맞춰 드립니다. 잠깐 만나서 친해진 다음에 들어가면 돼요."
'역할 대행' 서비스 내용을 문의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역할 대행 서비스의 그늘이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역할 대행 서비스가 처음부터 범죄 수단이 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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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여론에도 "범죄 몰랐다" 발뺌 땐 한계
"사기 방조, 업체 책임 묻게 제도 보완해야"
"다 맞춰 드립니다. 잠깐 만나서 친해진 다음에 들어가면 돼요."
'역할 대행' 서비스 내용을 문의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상황과 조건이 어떻든, 고객 입맛에 맞게 배우와 대사를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돈 얘기가 오가도 괜찮느냐"는 물음에도, 업체 관계자는 "아무나 연기자로 쓰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비쳤다. 1시간에 50만 원 정도만 내면 어떤 서비스든 오케이(OK)였다.
전청조(27)씨 사건이 허무맹랑한 사기극으로 드러나면서 왜 전씨에게 속을 수밖에 없었는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전씨를 믿게 만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속칭 '바람잡이'도 한몫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역할 대행 서비스의 그늘이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기 도우미들도 공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곱지 않은 여론에도, 업체들은 여전히 '수상한 의뢰'를 받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범죄가 밝혀져도 혐의 입증이 힘들고 처벌도 어려운 탓이다. 명백한 '사기 방조'에 해당하는 만큼 사법제도 보완과 적극적 처벌 의지가 필요해 보인다.
사기 냄새 물씬 풍겨도... "역할극 문제 없어"
역할 대행 서비스가 처음부터 범죄 수단이 된 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하객 도우미' '애인 대리' 등을 하는 일종의 아르바이트 업태로 등장한 후 영역을 넒혀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범죄자들은 신종 성매매, 사문서 위조 등 각종 범행에 가짜 대리인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 부산에선 업체가 제공한 허위 변호사를 앞세워 4억3,500여만 원을 뜯어낸 피고인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법 역할 대행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2일 한국일보 취재진은 역할 대행 업체 5곳에 "재력가 어머니인 척해서 아들인 내가 하는 사업에 투자하라고 지인들에게 권유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2곳에서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직접적인 투자 유도는 어려워도 "수완이 좋다, 가족도 덕을 봤다" 등의 칭찬을 할 수 있다는 업체도 2곳 있었다. 어떻게든 의뢰인 요구에 맞춰주겠다는 투였다.
만약 진짜 사기꾼이 이런 의뢰를 하고 피해가 발생할 경우 법리적으론 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법무법인 한일의 방민우 변호사는 "의뢰를 수락한 업체 4곳에 대해 방조죄 성립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실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권위를 빌려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수작을 알면서도 일조하면 공범으로 처벌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방 변호사는 "전씨 사건에서 어머니 역할을 한 인물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고의성' 입증... 처벌 쉽지 않아
문제는 여간해선 처벌까지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실제 의뢰인은 이용 의도를 숨기기 마련이고, 아르바이트생들도 "범죄인지 몰랐다"고 발뺌하면 '범행의 고의성'을 따지기가 어렵다. 법무법인 참본의 이정도 변호사는 "전체 범행 과정에서 대행 인력이 활용되는 시간은 짧아 수사기관에서도 입증이 까다롭다"고 말했다.
결국 업계의 자정 노력과 함께 법을 개정해 파견 인력의 사기 방조 행위에 민사적 책임을 씌우는 등의 제도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 변호사는 "아르바이트생이 방조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고용 업체까지 민사상 손해배상을 떠안아야 한다면, 업체 스스로 강화된 영업 가이드라인을 갖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씨의 사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 송파경찰서는 이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사기 혐의로 그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이 지금까지 파악한 피해자는 15명, 피해액은 19억 원을 웃돈다. 경찰 관계자는 "송파서와 강서경찰서에 접수된 신고만 합산한 결과라 중부경찰서 고소건 등을 합치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정다빈 기자 answer@hankookilbo.com
전유진 기자 xxjinq@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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