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09] 입장료를 받는 마을
영국의 남동쪽 데본(Devon) 지방의 작은 어촌 클로블리(Clovelly). 철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예쁜 경관으로 특히 유명하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바다에서 온 메시지(A Message from the Sea)’에도 등장하고, 이 마을의 해안 풍경을 담은 터너(J M W Turner)의 그림 또한 더블린 소재 아일랜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집성촌처럼 이곳에는 3개의 집안이 13세기부터 터줏대감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가 1738년 햄린(Hamlyn) 집안이 마을 전체를 소유하게 된다. 사유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여기를 방문하려면 마을 어귀에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사실 어느 유적지나 사찰, 미술관처럼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라면 납득할 만하다. 입장료는 주차비, 박물관·정원 관람을 포함한 비용이다. 그 수입은 마을의 고택을 보수하고 거리와 숲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데 사용된다. 1924년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이후 오히려 방문객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주민은 약 400여 명이다. 과거에는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지만 현재는 관광이 주산업이다. 마을 자체가 명소이자 문화재인 셈인데, 박제된 민속촌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우거진 숲을 지나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하나다. 좁고 가파른 경사로여서 차량은 진입할 수 없다. 주민이나 방문객 모두 걸어 다닌다. 그래서 공해나 소음이 없다. 과거에는 물건을 실어 나를 때 당나귀를 이용했으나 지금은 집집마다 구비된 썰매를 사용한다. 세탁기, 피아노와 같은 물건도 이 썰매 하나면 이동이 가능하다. 길 양편으로 세워진 집들 중 50여 채가 국가민속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어부들의 집 사이에 있는 작은 박물관이나 채소 정원, 티 하우스를 들러보는 여유로움도 즐길 수 있다.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끝까지 내려가면 파란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14세기에 지어진 작은 포구가 보인다. 마을의 하이라이트이자 기승전결의 결이다. 어느 주민의 말처럼 이곳의 삶은 불편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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