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은 인간의 전유물 아냐… 생쥐도 가보지 않은 장소 상상한다

이병철 기자 2023. 11.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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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상상력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생쥐의 상상력은 공간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가상의 물체를 만들고 이동까지 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티머시 해리스 HHMI 연구원은 "생쥐가 상상할 때 인간과 비슷한 신경세포의 활동을 보인다"며 "마치 인류가 그랬듯 생쥐도 오랜 기간 진화를 거치며 상상하는 능력을 얻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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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 연구진 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발표
생쥐 해마에 ‘뇌-기계 인터페이스’ 연결
생쥐 상상 속 공간 실제로 투사
보상 얻기 위해 가상의 목표물도 떠올려
미국 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HHMI) 연구진이 쥐의 상상력을 확인하기 위해 설계한 실험 장치. 쥐 뇌에 가상현실(VR) 장치를 직접 연결해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를 벽면에 투사했다./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상상력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동물이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복잡한 사고 활동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찾은 것이다.

미국 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HHMI) 연구진은 3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생쥐도 상상을 통해 가보지 않은 공간을 떠올리거나 존재하지 않는 물체를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상상력은 창의력과 함께 인간이 문명을 건설할 수 있게 된 능력으로 꼽힌다. 고고학자들은 뭉툭한 돌을 바닥에 내리쳐 부서지는 모습을 상상한 결과로 뗀석기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인류의 조상이 전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미지의 공간에 대한 상상과 기대의 결과다.

연구진은 동물도 상상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기술을 사용해 실험했다. BMI는 뇌에 기계 장치를 직접 연결해 신경세포의 활동을 측정하거나 생각만으로 장치를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연구진은 생쥐가 가보지 않은 장소를 상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가상현실(VR) 장치와 공간을 인지하는 뇌 부위인 해마를 연결했다.

연구진은 가상 공간에서 해마의 활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실험 장치도 만들었다.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구를 설치하고 주변에 가상 공간 화면을 비췄다. 생쥐가 구 위를 걸어도 마치 러닝머신처럼 제 자리에서 머무르지만 주변 환경을 이동시켜 마치 자유롭게 이동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 했다.

생쥐가 상상을 할 수 있는지는 ‘점퍼’와 ‘제다이’라는 이름을 붙인 두 가지 실험으로 확인했다. 두 실험 모두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됐다.

순간이동 능력자가 등장하는 영화 점퍼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실험에서는 생쥐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연구진은 생쥐가 가상 공간에서 목표 위치에 도착했을 때 보상으로 물을 줘 학습한 후 뇌 활동 신호를 수집했다.

연구진은 수집한 신호를 바탕으로 생쥐가 상상하는 공간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이 영상은 실험 장치 주변에 비춰 생쥐가 상상하는 공간을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생쥐는 보상을 얻기 위해 가상 공간에 목표 지점을 만들어 내고 그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지점을 상상만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은 사람이 목표 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이동하는 경로를 상상해 보는 것처럼 생쥐도 가고 싶은 장소를 찾아가는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생쥐의 상상력은 공간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가상의 물체를 만들고 이동까지 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스타워즈의 등장인물 ‘제다이’의 이름을 딴 실험에서는 생쥐가 목표 위치에 특정 물체를 가져다 놓으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후 점퍼 실험과 마찬가지로 뇌 신호를 해석해 생쥐가 상상하는 화면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생쥐의 상상 속에서는 물체를 만들고 목표 지점으로 옮겨지는 모습이 나타나며 보상을 얻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사람이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처럼 생쥐도 가상의 물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생쥐가 가진 상상력은 해마를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사람도 상상을 할 때 해마의 활성이 크게 증가하는 만큼 생쥐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티머시 해리스 HHMI 연구원은 “생쥐가 상상할 때 인간과 비슷한 신경세포의 활동을 보인다”며 “마치 인류가 그랬듯 생쥐도 오랜 기간 진화를 거치며 상상하는 능력을 얻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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