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07] 빈대를 생각하며
큰 건물 주변 골목은 어김없다. 여남은 명이면 약과, 수십 명이 연기를 뿜어댄다. 거기 혹시 빈대도 있으려나. 담배 얻어 피우는 사람 말이다. 사 갖고 다니면 많이 피울까 봐 그런다고들 했지. 흡연 인구가 꽤 많던 시절 얘기다. 이제는 멸종했을지 모를 그 빈대 말고 진짜가 나타났다는데.
‘빈대 40년 만의 습격… 외국인 머문 곳서 출몰.’ 빈대가 습격한다? ‘습격’은 갑자기 상대를 덮쳐 친다는 뜻. 그 주체가 마음먹고 하는 행위이니 빈대한테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비유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문제는 ‘출몰(出沒)’. 한자에서 보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일을 가리킨다. 이놈들은 사람 눈에 잘 안 띄는 곳에서 지낼 뿐 아예 자취를 감추는 게 아니다. 출몰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밖에. 게다가 한동안 없던 것이 새로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판이니 ‘출현(出現)’이라는 표현이 알맞다. 출몰은, 멧돼지가 밭을 헤집어 놓고 사라지거나 강도가 금품을 털어 달아나는 일 따위라야 어울리는 말.
얼핏 그럴싸하지만 실은 맞지 않는데 코로나처럼 유행하는 말이 또 있다. ‘대학로는 모두의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 ‘어떤 음식은 잊고 있던 삶의 기억들을 순식간에 소환한다.’ 법원이나 수사 기관에서 피의자나 증인한테 나오라 하는 일이 ‘소환(召喚)’이다. 단순히 불러내는 점만을 빗대 기억이나 추억에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되살리다’ ‘상기(想起)시키다’처럼 딱 들어맞는 말이 버젓이 있는데 어째서 억지 비유를 쓴다는 말인가.
‘오래전 놀이를 소환해 돌멩이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소환해’ 대신 ‘떠올려’를 떠올려보자. ‘투타 겸업 오타니가 소환하는 한국의 야구 스타’에선 ‘생각나게 하는’ ‘환기(喚起)시키는’ 하면 어떤가.
집에 들어온 빈대는 주로 가구나 벽 틈에서 지내며 사람 피를 빨아먹는다던가. 이 벌레 사는 곳(서식지)을 ‘주거지’라고, 좋아하는 ‘음식’은 사람 피라고 하지는 않겠지. 그러다간 빈대도 사람의 ‘먹이’라 할지 모른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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