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여권, 자기 의자 다리를 스스로 잘랐다
대선 승리 이끈 ‘선거연합’ 스스로 해체
국민의힘 좋아서 찍는 강성 지지층 30%뿐
중도·2030이 “필요해서” 찍게 만들어야
대통령 아닌, ‘후보’의 절박함이 필요해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는 내년 총선 시험 문제 정답을 슬쩍 보여준 격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이 써낸 문제 풀이가 틀렸다는 것이 드러났다. 전당대회 국면에서 장제원 의원이 말한 “윤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다”는 오답이다. 강서구민이 제시한 정답은 ‘민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윤심’이다.
장제원 의원은 “지금까지 당과 대통령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내부 총질’하면서 국민의힘이 어려웠지 않았냐. 전당대회에서 우리 당을 완벽하게 정비해 일사불란하게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당이 똘똘 뭉쳐 갈 때 국민이 안정감을 가지고 집권 여당을 믿어주고 지지를 보내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일사불란한 한목소리’의 결과는 17.15%포인트 격차의 참패였다.
대통령 레임덕은 야당의 공격, 언론의 비판, 정책 실패, 인사 실패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선거연합’을 스스로 해체하면서 시작된다. 마치 자기가 앉아 있는 의자 다리를 톱으로 스스로 자른 격이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급락은 ‘이준석 대표’를 내쫓으면서부터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위기 출발점은 바로 그 지점이다.
‘인요한 혁신위’도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난제가 ‘이준석’임을 잘 알고 있다. 혁신안 1호가 ‘징계 철회’다. 여러 사람을 함께 거론했지만 누가 봐도 이준석을 향한 ‘평화 협정’ 제안이다. 과연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마음이 많이 상한” 이준석 마음을 녹일 수 있을까.
이준석과 관련하여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①결별 ②굴복 ③타협. ①은 쉬운 선택이지만 이 시나리오의 약점은 ‘총선 패배’ 두려움이다. “나가면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요한 위원장도 “당사자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지 않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듯 ‘이준석 신당’은 국민의힘에 치명적 타격이다.
②는 길을 잃은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준석 전 대표에게 사과하고, 당 대표를 내쫓는 데 앞장선 핵심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의 치명적 약점은 윤 대통령의 ‘항복 선언’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당내 반발도 만만치 않아 보여 윤 대통령과 당이 선택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③은 타협책이다. 인요한 혁신위의 ‘징계 철회’가 출발점이다. 공천은 당연히 보장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의 약점은 칼자루를 쥔 이준석 전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제안’ 사이에서 ‘적절한 거래’를 끌어내려면 고도의 전략적 협상이 불가피하다. 실현 가능성으로 본다면 ③①②순이다. 어느 쪽이든 ‘미션 임파서블’이다.
국민의힘 공식 ‘레드팀’으로서 ‘인요한 혁신위’는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①위기에 동의하는가? ②원인은 무엇인가? ③해결책은 무엇인가? 세상일이 해결되지 않는 건 셋 중 하나다. 첫째, 원인도 알고 해결책도 아는데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로 대개 기득권 저항 때문이다. 둘째, 원인은 아는데 해결책을 아직 못 찾은 경우. 셋째, 원인도 모르는 경우다. 다행스럽게도(?) 국민의힘 문제 대부분은 첫째 경우다. 변화 의지만 있으면 다 해결할 수 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일성으로 ‘통합’을 얘기했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은 ‘혁신’이다. 인 위원장은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꾸자”고 했는데 ‘아내(윤 대통령)’와 ‘아이(김기현 대표)’가 문제의 핵심 아니냐는 것이 세간의 반응이다.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①혁신 대 기득권 ②새로움 대 낡음 ③미래 대 과거 ④통합 대 분열의 네 가지 전선에서 혁신·새로움·미래·통합에 서야 한다. 통합은 승리의 필요조건이고 혁신은 충분조건이다.
혁신위는 세 가지 의제를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①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기조와 정치적 태도 ②김기현 대표 체제 유지 여부 ③총선 승리 전략이다. 민심을 예민하게 읽고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지도부를 세워야 한다. 혁신위는 ①김기현 대표 체제 유지 ②비대위 전환 ③신당 창당 중에 어떤 방식이 그런 지도부를 세울 최선인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위기는 30%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다 중도층과 2030세대의 지지를 잃은 탓이다. 어느 정권,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도 지지자를 부끄럽게 만들면 안 된다. 지난 대선에서 ‘흔쾌히’ 찍은 사람은 여전히 지지하지만 ‘마지못해’ 찍은 사람은 대부분 지지를 철회했다. 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총선 승리는 난망하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전략 캠페인 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①우리에 대한 지지 강화 ②우리에 대한 반대 약화 ③상대에 대한 반대 강화 ④상대에 대한 지지 약화 중에 ②④③①순으로 전략을 재배치해야 한다. 지금은 ①③④②순으로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이념·자유·홍범도 이슈는 ①, 반국가세력·이권 카르텔·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③을 목표로 한 것이라면 (여당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하는) 김포 서울 편입 같은 이슈는 ②, 민주당이 야당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캠페인은 ④다.
‘국민의힘이 좋아서’ 찍는 30%만으로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스윙보터’인 중도층과 2030세대, 민주당 지지층 일부까지 확장하려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필요해서’ 찍게 만들어야 한다. 이념이 아니라 민생 공약에 캠페인 전략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강서구청장 선거의 참담한 패배가 윤석열 대통령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기조와 정치적 태도를 바꿀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선 때도 위기가 닥쳐오자 무섭게 변했던 모습에 기대를 거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는 변해도 대통령은 잘 안 변한다. 그러니 총선을 대선으로 생각하고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담대하게 변해야 한다. 마지막 기회다. 만약 그대로 간다면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는 ‘미리 본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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