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먼지, 사람이 살아가는 자취

김지선·국립정동극장 기획제작 PD 2023. 11.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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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기를 새로 샀다. 새로 산 청소기는 먼지통이 훤히 보여, 오늘 수확한 먼지 양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청소기를 돌린 후 생각보다 많은 양의 먼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먼지가 집에 있었다는 것이 영 찝찝했고, 이렇게나 많은 먼지를 청소했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매일 청소를 해도 먼지 양은 크게 줄지 않았다. 하루 동안 쌓이는 먼지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놀라웠고, 매일 청소하는 수고에 비해 매일 치워야 하는 먼지 양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도 못마땅했다. 괜스레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청소를 하는 나의 수고로움이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하소연했다. 대체 이 많은 먼지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왜 매일 청소를 해도 줄지 않는 것인지 따졌다. 엄마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사람이 사니까 그렇다. 사람 몸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이며, 밖에서 묻혀온 것들, 옷에서 털어진 것들이 다 쌓인 게 먼지다.”

사람 사는 곳엔 먼지가 있다. 공연장에서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에 하는 것이 무대 바닥과 객석 청소다. 무대 바닥과 카펫이 깔린 객석의 바닥은 꼭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한다. 그렇게 매일 청소를 해도 공연장에 들어서면 특유의 묵은 먼지 내음 같은 것이 느껴진다. 공연 중 배우들의 격정적인 연기와 동작 끝에 항상 조명기 불빛에 먼지가 반짝인다.

내가 쓴 희곡이 공연되던 날, 연출님은 유독 거울처럼 반짝거렸던 무대 바닥을 보며, 티가 나지 않겠지만 먼지 한 톨 없이 반짝거리도록 닦고 또 닦았다고 했다. 나는 커튼콜 무대에서 조명기의 빛을 받아 무대 가득 일렁이는 먼지들과 바닥의 흠집과 얼룩들을 보고, 더욱 뜨겁게 박수를 쳤다.

문득 기분 좋은 기억이 떠오르자, 청소하는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껏 살아낸 흔적을 청소하면서도 당연하게 내일의 먼지를 맞을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는 항상 먼지가 있으니까. 나는 즐겁게 먼지를 청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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