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타지키스탄이 선물한 인연과 그르노블서 힐링하다

경기일보 2023. 11.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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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 마을 축제에 모인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 김남희 여행작가

 

올해 7월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도시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프랑스 알프스 산자락 아래, 세 개의 산에 둘러싸인 도시 그르노블에서였다. 2019년 타지키스탄을 여행하다 만난 안느마리의 집이었다. 함께 만났던 욜란다도 파리에서 내려와 셋이서 7박8일을 보냈다. 올해 일흔하나인 안느마리와 일흔이 된 욜란다는 15년 전, 각자 혼자서 인도를 여행하다 만났다. 그 후 해마다 한두 달씩 여행을 같이 다니는 사이가 됐다. 그들은 여행 고수답게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파미르 하이웨이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늘 위트가 넘쳤다. 쉰을 넘기면서 깨닫게 된 인생의 격언이 있다면 이렇다. “체력이 인성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만큼 정신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체력이 부족하면 여행에서도 사소한 일에 불만이 생기고, 짜증이 날 수밖에. 체력이 있어야 타인에게도 친절할 수 있다. 그들은 고단한 여정에도 지친 티가 전혀 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하고 다정했다. 그렇게 스쳐 지나는 인연인가 했는데 올여름 안느마리가 자기 집에서 일주일쯤 머물다 가라며 내가 있던 제네바로 픽업을 온 거였다. 그르노블에 도착한 다음 날, 점심을 먹으러 나간 길이었다. 시내 가판대에 배우 알랭 들롱의 얼굴이 찍힌 잡지가 보였다. “알랭 들롱 아직 살아있어?” “살아있는데 멘털이 별로야.” “왜?” “극우에 가까운 보수주의자인데 어리석기까지 해. 인종차별주의자기도 하고.” 그러다 화제는 프랑스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프랑스는 이제 예전의 톨레랑스를 다 잃어버렸어. 매일 이민자나 난민을 공격해 대고, 점점 우경화되고 있어. 다들 겁먹은 채로 편견에 가득 차 언론과 정치인에게 휘둘리기나 하지.” “유럽은 과거에 우리가 저지른 짓들에 대한 책임이 있어. 난민을 받아들여야만 해.” 유럽인으로 산다는 일은 다른 세계에 빚 진 자로 산다는 거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그들의 이런 태도는 아마 여행을 통해 키워진 게 아닐까. 여행이란 결국 낯선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편협한 세계를 부수는 행위니까.

여름 휴가를 즐기는 프랑스 시민들. 김남희 여행작가

그들은 내가 오기 전에 일주일의 일정을 플랜 A와 플랜 B까지 짜 놓은 상태였다. 우리는 매일 그날의 일정을 정해 그르노블과 그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르노블은 프랑스혁명의 발원지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도 주변 알프스를 무대로 치열하게 펼쳐졌다. 그르노블 시내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트램 정거장이었다. 정거장 유리 벽면에는 빅토르 위고의 장편 ‘웃는 남자’의 소설 내용이 가득 인쇄돼 있었다. 정거장 이름도 작가의 이름을 따서 ‘빅토르 위고’. 우리도 이런 정거장을 만든다면 문학의 향기가 곳곳에 피어날 텐데. 다음 날은 케이블카를 타고 19세기 요새에 올라가 파노라마로 그르노블을 조망하고 지역 예술가의 전시를 보고 내려와 레바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그르노블 시립미술관으로 사이 톰블리 전시를 보러 갔다. 그는 낙서와 그림, 드로잉과 페인팅의 경계를 넘나든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그가 영감을 얻은 시인과 작가의 이름이 아주 성의 없는 필체로 달랑 적힌 그림이 가득했다.

김남희 여행작가

2015년 소더비에서도, 작년 하반기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그 낙서 같은 그림이 최고가에 낙찰되기도 했단다. 정말이지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했다. 진지함과 엄숙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볍고 자유롭게 그려낸 선들이 시원한 해방감을 주기도 했지만 결코 우리 집 거실에 걸고 싶은 그림은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공원에서 열리는 혁명기념일 기념 콘서트에 갔더니 온 도시의 사람들이 절반은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귓전에서 폭탄이 연달아 터지는 것 같은 하드록 음악에 혼이 나갈 것 같은 밤이었다. 그날 밤에는 집 테라스에서 불꽃놀이를 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어느 날 저녁에는 벨돈산 아래 마을에서 열린 ‘시네 콘서트’를 보러 갔다. 시네 콘서트는 영화 상영 중에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건데, 프랑스에서는 오래된 영화들을 대상으로 대유행이란다. 영화는 내가 존경하는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다큐멘터리 ‘가셔브롬’. 그가 1984년 파키스탄의 8000m급 봉우리 가셔브롬을 등정할 때의 이야기다. 문제는 영화가 독일어에, 자막은 프랑스어. 한마디도 못 알아들을 수밖에. 대신 영화 분위기에 꼭 맞춘 기타리스트의 연주가 아주 흥미로웠다.

그르노블 주변을 둘러싼 알프스 산간 마을의풍경. 김남희 여행작가

카루트시오 수도회의 봉쇄수도원을 찾아가 평생 작은 수도원에 스스로를 가둔 채 기도와 노동으로 청빈하고 숭고한 삶을 사는 수도사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산자락에서 피크닉을 즐기기도 했다. 하루는 산골 마을 축제에도 참여해 대형 천막 아래서 주민들이 준비한 저녁을 먹고 안느마리의 친구들과 수다도 떨었다. 재즈 밴드의 음악에 맞춰 안느마리는 흥겹게 춤을 추고, 나와 욜란다는 와인을 홀짝이며 구경하다 자정이 넘어 귀가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에는 그르노블에서 50㎞쯤 떨어진 호숫가를 따라 한 바퀴 도는 하이킹에 나섰다. 숲과 호수와 평원이 이어지는 하이킹 코스가 지루하지 않고 아름다웠다. 프랑스는 혁명기념일 이후가 휴가 기간이라 아이를 데리고 걷는 프랑스 가족이 많았고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는 이들도 종종 보였다. 우리도 호숫가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여름철 태양이 선물하는 비타민D를 마음껏 흡입했다. 그르노블과 더불어 프랑스혁명의 발원지인 비질성에 잠시 들렀다가 귀가하니 모든 일정이 끝났다. 다음 날이면 나는 제네바에서 인천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었고, 욜란다는 파리로 돌아가 텅 빈 파리를 즐길 계획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안느마리는 프랑스 남부의 어느 도시에서 열리는 탱고 페스티벌에 참여해 나흘간 탱고를 추며 보낼 예정이었고.

혁명 기념일 축제에 모여 음악을 즐기는 그르노블 시민들. 김남희 여행작가

그들이 그르노블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짠 덕분에 나는 그 도시의 속살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더 근사한 곳을 찾아 멀리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는 도시를 세심히 누릴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나는 늘 한 번의 여행을 통해 한 사람이 남으면 최고의 여행을 했다고 믿는데, 타지키스탄이 내게 남긴 건 안느마리와 욜란다였다. 육체적 나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기에 정신도 젊고 건강한 그들. 소박하게 살지만 예술을 향유하는 습관이 배어 있고, 낯선 이와 마음을 나누는 일에 경계심이 없는 사람들. 좋아하는 일은 망설임 없이 즐기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었다. 그들 덕분에 허세나 허영 없이 나이 들어가는 일의 즐거움을 배운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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