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관객 고작 3208명, 홍상수 신작 ‘우리의 하루’는 무얼 말해주나<1>

신정선 기자 2023. 11. 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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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9번째 레터는 홍상수 감독의 30번째 영화 ‘우리의 하루’입니다. 먼저, 죄송~. 레터 고정 요일인 목욜보다 하루 늦었네요. 어설픈 변명이지만, 영화를 한 번 더 보느라 늦었습니다. 대사가 중요한 영환데 제가 시사회 때 받아적다 일부 놓쳤거든요. 상영관도 얼마 없어 시간 맞추고 어쩌고 하느라… ^^;; 이게 카톡이면 여러분 모두에게 ‘뀨우’ 이모티콘을 발사했을텐데, 레터에는 이모티콘 지원이 안 되니 안타깝습니다. 그럼 (쑥스러우니까) 바로 들어가볼까요.

영화 '우리의 하루' 포스터. 홍상수 감독의 30번째 영화로, 지난 19일 개봉했다.

“응? 홍상수 신작이 나왔어? 벌써 30번째? 몰랐네.”

아마 독자분들 대부분의 반응은 이렇지 않을까 싶네요. 네, 지난달 19일에 개봉했습니다. 제가 레터 쓰고 있는 오늘(2일) 현재 관객이 3208명이네요. 4월에 나왔던 홍 감독의 29번째 영화 ‘물안에서’는 3918명. 지난해 개봉한 ‘탑’은 6134명. 올해는 작년의 절반 수준입니다. 홍상수 신작이라면 무조건 보러 가는 대한민국 충성 관객이 3000명대인 것 같습니다. 영화 시장이 전체적으로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탄탄한 독립영화라면 5000~6000명 정돈 나옵니다. 홍상수라는 이름값, 브랜드에 비하면 3000명은 매우 안타까운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홍상수 감독의 현실입니다.

물론 관객수와 작품성이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대중예술인은 대중 없인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골방에서 영상 찍어 혼자 이불 뒤집어 쓰고 볼 게 아니라면, 봐주는 대중이 있어야 인정도 받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홍 감독 작품이야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으니까 투자에 목맬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작품을 봐줄 관객은 필요합니다. ‘봐주거나말거나 나는 내 예술한다’, 홍 감독은 이런 생각인 걸까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물안에서’와 ‘우리의 하루’를 보고 알았습니다.

딴 얘기 잠깐. 여러분은 홍상수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을 기억하시나요.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두번째 작품 ‘강원도의 힘’(1998)은 더 좋았습니다. 당시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뿐 아니라 문화계 화제의 중심에 홍상수가 있었습니다. 데뷔작으로 이름 석 자를 단박에 알린 감독이 몇이나 될까요. 여러분은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을 보셨습니까.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2000)를 기억하시나요. 바로 대비되죠. 홍상수는 천둥번개처럼 등장한 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가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평론가들은 준비했다는 듯이 별 5개를 날리기 시작합니다. 마치 동맹이라도 맺은 듯 마구 던지더군요. 그들끼리의 언어로 번다한 해석을 나열하며 입 아프게 찬양했습니다. 그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이 땅 위의 대중에 도달하기 전에 공중에서 산화한다는 느낌이 든 것이. 유튜브에 남아있는 예전 영상에서 어느 평론가가 그러더군요. ‘홍상수 영화가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대중은 수준이 낮은 거다, 취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자극적이고 반전 있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반전 있는 영화를 좋아하면 취향이 떨어진다'라… 언제부터 ‘재미있는 영화=자극적인 영화=수준 낮은 영화’가 된 걸까요. ‘영화는 원래 일상을 보여주는 건데 대중이 이해 못 한다’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러면 서울 시내에 8000대인가 있다는 CCTV 영상을 정성껏 이어붙여 보여주면 그게 최고의 영화가 되는 걸까요. 또 어떤 평론가는 ‘홍상수 영화는 똑같지 않다! 그가 카메라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며 영화 ‘극장전’에서 줌을 쓴 걸 예로 들더군요. 그렇다면 관객들이 “어머! 홍상수가 줌을 쓰기 시작했다며!! 무려 줌을!!! 빨리 1만5000원 들고 극장 가서 봐야지!!!!’ 이래야 하는 걸까요. 그가 줌을 쓰고 안 쓰고가 아니라 관객과 소통이나 의미 전달이 더 중요한 게 아닐지요.

저는 ‘옥희의 영화’(2010) 이후 그의 영화를 보는둥마는둥 하다(‘옥희의 영화’는 좋았습니다) 영화 담당을 맡으면서 올해 개봉한 두 작품을 찬찬히 봤습니다. 그는 제가 안 본 사이에 변했더군요. 어느새 환갑을 지난 그는 30편이나 되는 작품을 쌓으며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발화하고 있었습니다. 지지 않고, 굴하지 않고, 굽히지 않고. 왜냐구요.

홍상수의 29번째 영화 '물안에서'. 올해 제73회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중 하나인 인카운터 부문에 초청됐으나 수상은 못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4월에 개봉한 영화 ‘물안에서’에 있습니다. ‘물안에서'는 홍상수가 의도적으로 아웃포커싱, 그러니까 사물의 초점이 맞지 않게 찍은 영화입니다. 두 장면인가 빼놓고 인물의 형체가 죄다 뿌옇게 나와요. (웬일로 평론가들이 그의 이런 새로운 시도는 찬사가 없더군요. 줌 쓴 것보단 아웃포커싱이 훨씬 대담한 시도인 것 같은데요.)

‘물안에서'는 세 사람이 영화 찍으러 다니는 얘긴데, 거기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물어요. “왜 갑자기 이 영화가 만들고 싶어졌어요?” 거기에 대한 대답. “명예지 명에. 명예를 원하는 거지. 명예를 얻고 싶은 거 같애.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 똑같지 않나. 돈 아니면 명예잖아. 나도 똑같애. 돈 버는 영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런 걸 찍을 능력도 없고. 명예만 얻고 싶은 거 같애.” 저는 이게 홍상수의 지금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예. 천둥번개 같던 30대 영화 청년은 환갑이 넘어 이제 명예를 원하고 있습니다.

옛날 얘기까지 넣었더니 너무 길어졌네요. 정작 ‘우리의 하루’ 얘기는 시작도 못 했는데. 내일 바로 다음 편으로 보내드릴게요. 너무 길면 읽기 싫어지실 듯 해서 끊고 가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내일 바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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