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楚나라 사람이 쏜 화살

유석재 기자 2023. 11.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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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살 같은 세월이라 탓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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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종병기 활'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벌써 11월이라니! 세월이 지나치게 빠르게 흘러가는 듯합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 끝에서 완연한 빛이 보이던 2023년 새해는 무척 희망이 넘쳐나는 듯 보였습니다. 지난해 11월과 지금을 비교해 보자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진 걸까요? 곰곰 생각해 보면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침착하게 자문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은 아닐지라도, 먼 훗날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부질없는 일들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소모된 것은 아니었을까, 당혹감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 엄청난 열정과 바람과 환호와 기원과 밤샘들의 총합(總合)이란 기껏, 세상을 뒤집어버린 뒤의 새로운 주류(主流)를 자처하는 크고 방장(方壯)한 목소리들이, 그 속에 편입되지 못하는 이질적인 사고와 언어들을 앞뒤없이 배척해버리는 광기(狂氣)의 시대가 또 다시 출현할 것임을 나타내는 신호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불언자고(天不言自高) 지불언자후(地不言自厚).

하늘조차도 스스로는 높다고 말하지 않으며, 땅이라 해도 스스로가 두텁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한 해가 그냥 지나간 것 같다고 지레 상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제까지 무언의 지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가 선후(先後)와 경중(輕重)을 따지는 한 마디에 ‘실망스럽다’는 말을 내뱉을 필요는 없습니다. 정녕 그 실체가 후덕(厚德)하고 준걸(俊傑)스럽다면, 그 주변을 빙 두르고 있는 자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이나 곡학아세(曲學阿世) 따위에서 그게 섣불리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그 참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각자의 지극히 사적인 생활 현실에서 살아가는 무미건조한 개념의 일반인들이란, 그저 묵묵히 세상 돌아가는 걸 지켜보는 어제와 마찬가지의 방법을 따를 뿐입니다. 그렇지요, 아직은 어떨지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이 뭔가 달라졌다고 느낀다면, 그건 무엇보다도 당신이 변한 탓이 먼저겠지요. 그저 어제처럼, 한 달 전처럼,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당신의 일을 하면 될 뿐. 점점 더 멀어져가는 것, 그런 것은 없습니다. 진작부터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던 그 길을 걷고 있을 뿐.

사물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서로(Henry David Thoreau)

‘설원(說苑)’ 지공(至公)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오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한(前漢) 말에 ‘열녀전(列女傳:’烈女傳'이 아닙니다)’을 지은 유향(劉向·'유상’으로 읽는 게 올바른 발음이라고도 합니다만)이 찬(撰)한 이 설화집이 무슨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 사료(史料)는 아닙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으리라고 믿기에는 의심이 따릅니다. 다만, 그 말에서 취할 수 있는 여운이란 쉽사리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여기 다시 적어봅니다.

초(楚) 공왕(共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활을 잃어버렸다. 좌우의 신하들이 ‘찾아보겠습니다’ 하고 나서자 공왕이 말했다.

楚共王出獵而遺其弓, 左右請求之, 共王曰:

(초공왕출렵이유기궁, 좌우청구지, 공왕왈)

초 공왕. /baike.soso.com

공왕은 춘추시대 초나라의 군주입니다. 오패(五覇) 중의 하나로 알려진 장왕(莊王)의 뒤를 이었습니다. 기원전 588년에서 560년까지 왕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천자인 주(周)나라 왕 외에는 왕(王)의 칭호를 쓸 수 없었으므로, 제(齊), 노(魯), 진(晋), 진(秦) 같은 다른 제후국들은 모두 ‘공(公)’의 칭호를 썼습니다. 초나라의 경우 후세 사람들은 참칭(僭稱)한 왕으로 표현함으로써 주 왕조의 정통성과 대의명분을 살렸습니다.

“관 두거라! 초(楚)나라 사람이 활을 잃었으면 초(楚)나라 사람이 그걸 다시 주울 것이다. 뭘 하려고 다시 찾는단 말이냐?”

止, 楚人遺弓, 楚人得之. 又何求焉? (지, 초인유궁, 초인득지, 우하구언)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초인유궁, 초인득지(楚人遺弓, 楚人得之).

초나라 땅에 활을 흘린들, 그 넓은 초나라 땅 어딘가에 작은 활 하나를 흘려버린들, 그 활은 언젠가 필요한 누군가가 줍게 될 것. 그러면 그 뿐. 그 사람 역시 초나라 사람일 것. 내가 굳이 찾아 쓰지 않더라도, 결국은 초나라 사람이 그 활을 쓰게 되는 것일 터.

어긋나 보이더라도, 잘못돼 보이더라도, 이상해 보이더라도 그건 그 때뿐. 광대무변한 시간과 역사의 대지(大地) 위에서 그깟 활 하나 없어진 것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세월이 흘러 그 활이 낡고 닳아빠질 때 쯤이면, 그 활이 어느 방향을 향해서 몇 발의 화살을 쏘았는지가, 그때까지도 그렇게 중요한 얘깃거리로 남아있을까? 그가 그 활을 어떻게 쏜들, 당신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위해서 걷고 있는 일상의 정도(正道)의 질(質)보다도 더 당신 자신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는 동인(動因)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지금 활이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당신들은 애당초 그 활의 주인도 아니었다. 반대로, ‘우리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활을 주웠다’고 기뻐했단 사람들, 도대체 그가 활을 주운 사실 자체가 당신 자신의 사적(私的)인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만한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희비(喜悲)는 당찮다. 누군가 그걸 유용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나 원래의 용도에 알맞게 쓰면 그 뿐. 행여 아는가, 혹시 아주 잘 쓸 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다면? 그 활 줍는 모습을 잠깐 봤는데, 활 만지는 기본부터가 영 아니더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던데. 설령 그렇더라도, 그래도 좀 기다려 볼 밖에. 아직은 제대로 쓰지 않았으니까. 아직은.

모든 것은 쉴 새 없이 변해갑니다. 흐르는 강물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2023년 11월의 나는 결코 2022년 11월의 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강물이 끊임없이 흐른다는 그 사실만큼은 세월이 강물처럼 면면히 흘러간 뒤에도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바다로만 흘러간다는 것도.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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