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우경임]한국 응급실에만 보이지 않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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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강국 아니었나."
우리나라 응급실이 다른 나라 응급실과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어느 나라에서건 필수의료 분야 의사는 힘들고 고된 직업이었고, 응급실은 피하고 싶은 직장이었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시스템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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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강국 아니었나….”
우리나라 응급실이 다른 나라 응급실과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18년째 3058명인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두 부처 소관인 소방당국과 병원이 협력해야 하는 응급환자 실시간 이송 시스템 도입, 대형병원과 동네병원의 원격 협진…. 하나같이 중증·응급환자의 생사가 달린 정책이지만 우리나라에선 10년 넘게 아무런 진척이 없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다녀온 나라들에선 이미 실행 중이었다. ‘시스템 도입이 어렵진 않았냐’는 질문에는 “환자를 살려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어느 나라에서건 필수의료 분야 의사는 힘들고 고된 직업이었고, 응급실은 피하고 싶은 직장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처럼 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표류’ 같은 일은 볼 수 없었다. 장기 전망에 따라 의사들을 길러내고 있었고, 의사와 환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본은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가까운 병원에 경보를 울리는 ‘마못테(まもって·지켜줘) 네트워크’와 구급대원 단말기에 이송 가능한 병원을 자동으로 띄워주는 ‘오리온 시스템’을 도입했다. 독일은 중앙구조관리국이, 캐나다 앨버타주는 전원·의료지도센터가 지역 내 모든 병원의 병상과 의료진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환자를 치료할 병원을 찾아준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시스템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 있다.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의료진과 병상 현황이 실시간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정부는 상황실 인력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는 예산을 쓰지 않는다. 소방당국은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부담을 피하려 환자 정보를 응급실과 연동하는 것을 꺼린다. 그런데 정부가 법적으로 이를 정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한 한국에서 수동으로 환자가 갈 병원을 찾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의사 수요 증가에 따른 의사 양성에도 게을렀고 필수의료 의사에 대한 처우 개선은 외면해 왔다. 의사들이 의료사고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호소하는데도 과감한 지원은 없었다. 캐나다는 의사의 책임보험을 의무화했고, 보험료(연간 500만 원)의 80%를 주 정부가 부담한다. 대만은 아예 출산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의사 과실이 전혀 없더라도 국가가 배상한다.
독일에서 취재팀이 만난 한 의사는 한국의 응급환자 ‘표류’ 현상을 설명하자 “인간이 만드는 어떠한 법제든 시스템이든 생명에 최우선을 두고 맞춰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신경외과 의사가 비번인 날 뇌출혈이 일어나고, 휴일에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길거리를 헤매다 자칫 생명을 잃는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응급실 어디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는 정부는 볼 수 없었다. 어쩌면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그들의 가족은 응급실 앞에서 내쳐진 적 없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경임 정책사회부 차장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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