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마약중독자 처벌만 있고 치료는 갈 곳 없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2023. 11. 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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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우 과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의료진이 ‘NO EXIT’ 캠페인에 동참한 뒤 본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를 캠페인 다음 주자로 지목했다. 사진 출처 서울의료원 인스타그램
“‘출구 없는 미로’ 마약! 시작은 곧 파멸입니다.”

경찰청과 마약퇴치운동본부 등에서 올 초부터 시작한 마약 예방 ‘NO EXIT’ 캠페인이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해 단 한 번만 투약해도 헤어 나오기 어려운 특성을 ‘출구 없는 미로’로 표현했다. 필자도 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우 과장의 지명을 받아 이번 캠페인에 동참했다. 물론 지명받지 않아도 누구나 자발적으로 인증사진을 찍고 후속 주자를 지명해 캠페인에 동참할 수 있다. 연말까지 진행되는 NO EXIT 캠페인은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을 시작으로 마약 범죄의 심각성 때문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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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유명 연예인과 가수들의 마약 투여 의혹들이 연일 쏟아지면서 ‘NO EXIT’ 캠페인이 무색해졌다. 우리나라의 마약사범 수가 2015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었고, 2022년 1만7402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구나 최근 몇 년 사이, 필로폰, 코카인 등 심각한 마약이 다량 압수되는가 하면, 중독성이 강화된 신종 대마도 사회적 이슈가 됐다.

어디 국내뿐인가. 동남아시아, 특히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태국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대마초 재배 및 판매를 합법화하면서 관광객도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태국에서는 심지어 음식의 맛을 높이기 위해 대마초를 넣는 음식점도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그런 식당에 갔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도 한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대마를 섭취하거나 흡연하는 것은 해당 국가에선 합법적인 행위라도 속인주의에 따라 한국에서 처벌된다.

또 일상생활 중 흔히 처방되고 복용하고 있는 다양한 중독성 의약품도 그 처방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프로포폴 처방을 위해 의료기관 2곳 이상을 방문한 사람 수는 2019년 48만8000명에서 2022년 67만6000명으로 4년 사이 18만8000명이 늘었다.

더구나 몇 달 전엔 한 환자에게 이른바 ‘좀비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패치를 불법 처방한 혐의로 현직 의사가 처음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구속된 의사는 펜타닐 패치를 한 환자에게 무려 4000회 넘게 불법 처방했다. 환자는 병원 16곳에서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이를 되파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비상식적인 처방으로 인해 의사가 처벌받는 것은 마땅하겠지만, 의사들이 앞으로 마약류 처방을 꺼려 꼭 처방받아야 하는 환자들조차 제대로 처방받지 못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까 봐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통증학회 관계자는 “통증으로 하루하루가 힘든 환자들에겐 의료용 진통제가 필요한데 지금은 처방했다가 처벌받을지도 모르는 상황 때문에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물론 최근 이 학회에서 국내 처음으로 환자에게 초점을 맞춰 의료용 마약성 진통제 사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숨통을 터주고 있긴 하다.

더 큰 문제도 있다. 범죄적 측면에서 마약중독이 됐든, 의료적 측면에서 사용하다가 중독이 됐든 간에 이들을 치료할 병원이 현재 마땅치 않다. 이들은 치료, 예방, 단속, 처벌의 전 과정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통합적 접근 방법이 필요하지만 치료 기관도 적절한 치료제도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에 마약류 중독자 지정 치료보호 전문기관 총 21곳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전문의가 제대로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현실이다. 대한통증학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은 무늬만 운영 중이다. 현황을 조사해 보면 서울 시내에는 실제로 운영되는 곳이 없다”면서 “그나마 수도권에서는 인천 참사랑병원, 경남 국립부곡병원만 운영되고 나머지는 중독전문의를 구하지 못해서 명단에 이름만 올라가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도 높다. 국내 마약사범에 대한 형사처벌 체계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실형선고율이 높은 재범의 경우 수형 생활로 인해 치료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처벌만 있고 치료는 없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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