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땅이름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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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문화의 보고이다.
무엇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항상 말이 필요하니, 거기에는 공동체의 온갖 게 담기고 스며든다.
따라서 문화를 잇고 만들려면 말부터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삼개'에서는 거기가 밀물 때 배가 몰려들던 포구임이 드러나며, '당'이 든 말에서는 '당 문화'가 붙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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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가리키는 ‘당(堂)’이란 말이 있다. 토속 신앙에서는 주로 ‘당집’을 가리키는 말로 통한다. 그것은 여러 검님(신령), 곧 산신, 칠성님, 용신 등이나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집이다. 오래된 나무나 돌무더기가 옆에 있고, 제사를 지내며 신성시하던 곳이다. 예전엔 큰 동네마다 있다시피 했지만 근래에는 그런 믿음이 거의 사라져, ‘당산제’를 지내거나 ‘당굿’을 하는 마을은 보기 어렵다.
서울의 전철역 이름에 ‘당산’, ‘당고개’가 있다. 지도에서 검색해 보면, 그들과 뿌리가 같은 ‘당산 마을’, ‘당거리’, ‘당산들’ 등이 전국에 숱하다. 믿음뿐 아니라 산업도 바뀌어 사람들이 도시로 몰림에 따라 전통 마을이 해체되면서, 이제 ‘당 문화’는 민속행사나 땅이름에 자취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
한편 근대 이전에는 물길이 고속도로였다. 그래서 바닷가, 강가에 거주지가 발달하고 수운(水運)과 상거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경인지역의 ‘마포’, ‘김포’, ‘영등포’, ‘제물포’ 등이 그런 곳이다. 이들에는 한자어 ‘포’가 들었는데, 그와 함께 사용되는 말이 ‘개’이다. 전국에 많은 지명 ‘안개(내포)’, ‘뒷개(후포)’ 등이 대표적인 예다. 강이나 내라도 바닷물이 들어오는 포구면 ‘개’가 쓰인다. ‘갯벌’, ‘갯마을’에서 보듯이, 바다와 연관된 토박이말인 까닭이다. 두 말의 관계를 한강변의 ‘마포’에서도 볼 수 있다. 그곳의 본래 이름은 ‘삼개’이다. 한자 ‘삼마(麻)’ 자의 뜻을 빌려 적다 보니 소리가 바뀌어 다른 말처럼 되었지만, 같은 말의 다른 표기이다.
‘노량진’을 ‘노량나루’, ‘송도’를 ‘솔섬’으로 부르면 어떤 곳인지 알아듣기 쉽다. 하나 애석하게도 한국어의 역사는 토박이말을 버려온 역사이다. 그래도 ‘삼개’에서는 거기가 밀물 때 배가 몰려들던 포구임이 드러나며, ‘당’이 든 말에서는 ‘당 문화’가 붙잡힌다. 이렇게 땅이름은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광맥이다. 동네 주민끼리 모여 주변 땅이름을 탐색한다면, 사라진 마을문화를 이어갈 콘텐츠가 만들어질 것이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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