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또 다른 시작…받아들여야 ‘온전한 애도’[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요즘 연구실 울타리를 벗어나 타 학문 연구자 또는 일반 대중을 만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그리고 이런 만남 속에서 종종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신선한 충격을 넘어 새로운 배움과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한번은 함께 공부하고 있는 현대 미술가에게 작은 ‘미(微)’생물이 아름다운 ‘미(美)’생물이기도 하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사담을 시작했다.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였는지, 그는 아주 흥미롭다며 그 근거를 설명해달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의외의 반응에 신이 난 나는 우리 창자에 사는 장내미생물을 예로 들어 즉석 강의(?)를 시작했다.
미생물학자가 미술가에게 들려준 이야기
인간 장 건강에 필수적인 미생물
침입자에 해로운 물질 만드는 등
면역체계와 긴밀하고 활발한 소통
“미생물에게 인체 소장과 대장은 아주 좋은 집이자 식량 공급원입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삶의 터전에 외래 미생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일단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공간과 먹이를 선점하고, 침입자에게 해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이런 텃세는 인체 면역에 큰 힘을 보탭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장내세균 집단의 구성과 우리의 장 건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항생제를 비롯한 약물 복용이나 스트레스 따위로 인해 정상 장내미생물 집단이 손상되면, 다른 잡균들이 득세하게 되어 해로운 변화를 초래하고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장내미생물이 자기네 보금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우리 장 건강의 선결 조건이라는 얘깁니다. 실제로 장내미생물은 우리 면역계와 긴밀하고도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고요.”
이 정도면 예쁘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마무리하려는데, 또 다른 질문이 날아든다.
물벼룩 실험서 ‘숙주 죽음’도 인지
같은 음식물 먹던 공생관계 멈추고
사체를 양분 삼아 분해 시작
“소통이라고요? 그러면 장내미생물이 우리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순간 당황할 정도로 핵심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장내미생물이 동맹군으로서 장 건강을 책임지지만, 언젠가 숨이 다하는 순간이 오면 태도가 180도 바뀌거든요. 자기 거처를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시신 부패의 시작은 보통 장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예술가는 미생물이 숙주의 죽음을 실제로 인지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냐며 뚫어질 듯 응시했다. 내 얼굴이 반사될 정도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니 단답형으로는 그의 호기심을 더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좀 더 과학으로 들어가야 함을 알리고, 사람 장내미생물이 아니라 설정한 실험 조건에서 변화 양상을 관찰할 수 있는 실험동물 대상 연구 사례를 소개했다. 사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미생물 관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장내미생물에게 모든 동물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꾸어야 하는 보금자리이지만, 생을 마치는 순간 한갓 좋은 먹잇감이 되어버린다. 이런 급변 사태는 장내미생물 무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른 장내미생물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한 스위스 연구진이 큰물벼룩(Daphnia magna·사진)을 대상으로 실험에 나섰다.
물벼룩은 민물에 사는 작은 갑각류를 일컫는데, 그 종류가 다양하다. 보통 물벼룩 몸길이는 1~2㎜ 정도이고 수컷이 암컷보다 작다. 연구진이 택한 큰물벼룩은 이름대로 물벼룩 가운데 덩치가 가장 커서 암컷은 약 5㎜, 수컷은 2㎜까지 자란다. 연구진은 큰물벼룩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쪽에는 먹이를 충분히 주고, 다른 쪽은 굶기면서 장내미생물 조성 변화를 비교·분석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숙주가 포만감을 느끼든, 배고픔에 시달리든 장내미생물 다양성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숙주가 생을 다하자 두 물벼룩 모두에서 장내미생물 다양성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번성하는 미생물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쇠퇴하는 구성원도 있었다. 숙주와 절대적 공생 관계에 있던 미생물은 숙주 사후 직후 급감했고, 조건부 공생을 하던 미생물은 숙주가 죽기 직전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죽음이 숙주를 한갓 먹이 덩어리로 바꾸는 순간 생전에 공동운명체였던 장내미생물은 이제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한다. 그동안 숙주가 섭취하는 음식을 함께 즐기던 호시절이 지났을뿐더러 새로운 거처(숙주)도 찾아 나서야 한다. 당장 먹고사는 게 급선무이니 우선 숙주 사체에 입을 댈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러한 급변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과 능력은 미생물마다 다르지만, 숙주의 죽음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미술가가 미생물학자에게 들려준 이야기
미생물 세계에서 죽음은 끝 아냐
똑바로 마주할 때 애도할 수 있어
생물권 대부분 이루는 미시 세계
예술로 가시화해 표현…‘멜팅존’
“그러니까 미생물이 숙주의 상태를 감지하고 그 숙주를 양분으로 점유하고 분해하는 다음 단계 전략을 선택한다는 말이지요? 음, 살아가는 동안 숙주와 공생하며 이바지했던 미생물들이 숙주 죽음 이후 또 다른 공생법으로 전환하며 살아간다는 게 신기하네요. 이렇든 저렇든 결국에 가서 미생물은 다 살아남는 거군요!” 핵심을 관통하는 작가의 목소리에 놀라움과 함께 생각이 융합되는 짜릿함을 느꼈다.
일단 물꼬가 트이자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했던 미술가와 영감을 나누는 대화가 시나브로 이어졌다. 그는 미시 생명의 활동을 탐지하기 위해 서해안에 가서 바닷물로 가득했던 해변이 썰물 때가 되자 촉촉하고 커다란 갯벌이 되는 광경을 관찰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거기서 만난 수많은 생명, 곧 미생물과 저서생물이 육지에서 흘러든 각종 화합물과 생물의 배설물과 사체를 먹어치움으로써 바다 오염을 막고 있음을 제대로 체험했다면서 그 느낌을 다음과 같이 아주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갯벌은 살아 숨 쉬는 땅으로 불리지만, 그만큼 죽음으로 가득한 땅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사는 생물들은 쉴 새 없이 부패한 것을 소화하는 과정으로 바다 생태계의 순환을 돕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갯벌에서의 죽음은 생명이 쓸모를 잃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하고 무한한 생명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갯벌에서 발견한 죽음을 현대 사회에 대입해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인간 사회는 생산과 개발에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죽음과 부패의 과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삶에서 죽음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생과 멸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둘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사라지게 되면 순환할 수 없게 됩니다. 바다에서 보았듯 생명은 단지 변화할 뿐, 죽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의도치 않은 융합적 대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게 죽음은 여전히 심오하고 두려운 영역 안에 있지만, 이제는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최근 내내 맴돌던 상념도 정리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징표인지, 부모와 영원한 헤어짐을 고하는 동년배를 위로하는 횟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보통은 장례식장을 찾아 부의금 함에 봉투를 넣고 영정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다음, 유가족에게 틀에 박힌 짧은 인사말을 건네고 돌아온다. 솔직히 그런 조문이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의문이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절친한 철학자에게 털어놓았는데, 그가 해준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는, 삶은 사랑으로 엮여 있어서 삶이 죽음으로 변용될 때 사랑은 슬픔으로 변하고, 그래서 그 사랑을 애도하는 것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형성하는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밀폐된 공간에서 가히 인스턴트라 할 만큼 간편하고 신속하게 애도 의식을 치르는 장례가 과연 애도 작업의 성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철학자 말에 공감한 나는 애도 작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미술가와의 대화 덕분에 죽음을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명 순환(circle of life)’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게 온전한 애도의 시작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는 올 초에 읽었던 <분해의 철학>을 펴서 몇 구절을 곱씹어 읽었다. 책에 따르면, ‘분해(分解)’를 이루는 ‘해(解)’라는 글자는 ‘푼다’ 또는 ‘풀린다’를 뜻하는 고대 일본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형을 상실하고 뿔뿔이 흩어짐이 아니라 다시 맺어질 거라는 예감 속에서 분리되어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서로 ‘오고감’을 표현하는 개념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자연 생태계에서 분해는 단순히 해체나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뜻한다는 얘기다.
지구 전체로 보면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뭍과 물 그리고 하늘을 아우르는 공간, 이른바 ‘생물권’은 지구 표면의 얇은 층이다. 그런데 이런 생물권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며 사는 인간이 이곳의 주인 행세를 해왔다.
반면, 미생물은 생물권 전체의 물질순환을 관장하고 화학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존립에 필수적인 역할을 은밀하게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지구상 모든 삶의 바탕이 되는 미시 세계는 정작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그 미술가와 나는 미시 세계를 가시화해 대중에게 선보이자고 의기투합했다. 감지할 수 없는 미시 생명의 현상을 빛과 소리 설치로 선보이려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예술 작품을 매체로 미시 생명의 움직임을 시청각적 파형과 미세 진동의 촉각적인 감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생명은 긴장, 불안, 위기의 경계점에서 그들이 내포한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드러낸다. 비록 우리가 직접 느끼지는 못하지만, 자연의 고요함 속에는 격렬한 생명력의 소통 체계와 통제할 수 없는 변화에 대응하는 불안의 알림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러한 미시 세계 속에 얽혀 혼재하는 삶의 공간을 ‘멜팅존(Melting Zone)’이라는 이름으로 함축해보았다.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생물학의 쓸모>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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