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비준 철회법안 승인했다
러시아 “자국민 보호용” 주장…핵군비 경쟁 위험 고조
‘서방 우크라 지원 제동’ 목적, 핵실험 접근할 우려 나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철회하는 법안에 최종 서명했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대립이 격화하고, 북한의 핵개발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에서 세계가 핵군비 경쟁 수렁에 빠질 위험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법령 웹사이트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CTBT 비준 철회 법안에 서명했다고 공지했다. 앞서 러시아 하원(국가두마)과 상원은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당시 뱌체슬라프 볼로딘 하원의장은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미국 잘못”이라며 러시아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CTBT 비준 철회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앞서 지난 1일 푸틴 대통령이 비준 철회 법안에 서명하기 전에 미국과 접촉할 계획이 있느냐는 타스통신 질문에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CTBT는 전쟁이나 평화 유지 등 목적과 무관하게 어떠한 경우에도 핵무기 관련 실험을 금지하는 국제조약으로, 1996년 9월24일 유엔총회에서 승인됐다. 총 196개 당사국 가운데 187개국이 서명하고, 이 중 178개국이 비준했다. 그러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개발 가능성이 있는 44개국 중 8개국이 비준하지 않아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이집트, 이스라엘, 이란, 중국이 비준하지 않았고 인도, 북한, 파키스탄은 서명도 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5일 발다이 토론 연설에서 미국이 1996년 이 조약에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 않은 것처럼 러시아도 CTBT 비준을 철회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핵실험을 재개하지 않는 한 자신들도 핵실험을 다시 시작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제동을 걸기 위해 핵실험에 접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핵무기 능력을 거듭 상기시켜왔다. 지난 3월에는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기로 양국이 합의했으며, 7월1일까지 핵무기 저장시설을 완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와사키 아키라 핵무기폐기국제캠페인(ICAN) 국제공동운영위원은 “(비확산과 군축을 전제로 한) 세계의 핵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며 “핵 보유 5개국에는 이성이 있어 이상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무너지고 있다”고 도쿄신문에 말한 바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핵탄두 5428발을 보유하고 1644발을 실전 배치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5977발을 보유하고 1588발을 배치한 상태이다. 영국은 225발, 프랑스는 290발, 중국은 350발을 보유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비회원국인 이스라엘(90발), 인도(160발), 파키스탄(165발), 북한(20발)도 핵탄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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