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글로…무인점포는 ‘비대면 사랑방’
코인 빨래방 등 무인점포에
공책·포스트잇 이용한 소통
생활 꿀팁·위로 등 주제 다양
손님 “마음 따뜻해지는 대화”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한 한 무인 코인빨래방. 책상 위에 공책 3권이 놓여 있다. 이용자들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공책이다. 공책은 서로 다른 글씨체로 적힌 형형색색의 말들로 빼곡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가 대차게 차였다. 마음이 아프네요’라고 누군가 속상함을 토로하자 ‘지금 당장은 마음 아프겠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실 거예요!’라는 위로가 이어졌다. 한 이용자는 ‘모달 이불은 잘 안 마른다는 생활 꿀팁부터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이나 고민까지 공책을 통해 읽을 수 있어 위로를 받았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서울 곳곳 늘어나는 ‘무인 점포’가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시민들의 ‘비대면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소소한 생활 꿀팁부터 진지한 조언, 인생 위로까지 대화 주제도 폭넓다. 이용자들은 ‘신선하다’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 유학 온 사사야마 리오(24)도 ‘이것을 본 당신은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는 글과 함께 그려진 캐릭터 밑에 ‘그림이 귀엽다’는 댓글을 달았다. 사사야마는 “마트도 다 무인으로 바뀌어서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하고 싶은 유학생으로서 아쉬웠다”며 “코인빨래방에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공책이 있어서 반가웠다”고 했다.
서울 다른 지역의 무인 점포에서도 ‘비대면 대화’가 오간다. 슬픔과 희망이 있고, 위로와 공감이 있다. 성북구의 한 무인 카페에 붙은 ‘결혼한다’는 메모에는 ‘행복하세요’ ‘부럽다’라는 축하글이 달렸다.
업주들은 손님과 만나지 못하는 무인 점포 특성을 보완하고자 공책이나 포스트잇 등을 사용한다고 했다. 성북구에서 코인빨래방을 운영하는 한모씨(61)는 “건의사항이 적히는 경우 그걸 보고 고칠 수 있고 이렇게라도 소통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성북구의 또 다른 코인빨래방 공책 맨 앞장에는 ‘고객님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트를 만들었다. 자유롭게 활용해달라’고 적혀 있다.
메모를 보는 이용객들 반응은 긍정적이다. 현모씨(25)는 “동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넣어 달라고 붙여놓은 아이의 메모가 귀여웠다”며 “혼자 살아서 동네에 대해 잘 모르는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실감이 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비대면 활동의 증가로 ‘무인 소통’이 활성화됐다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전에도 대학가 막걸리집 벽에 댓글을 남기는 경우가 있었다”며 “비대면이 일상화하며 무인 점포로 공간이 달라진 것뿐 타자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관계를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은 같다. 공책 소통은 그런 본능을 충족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정효진·김세훈 기자 h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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